『인왕산을 먼 나라 같이 바라보곤 했다. 내가 자유의 날이 될 때 무엇을 할까. 일제의 말과 글의 말살정책에 대항해서 어문사전을 만들어 보자』60여년 전 춘천에서 상록회(비밀독서회) 활동을 하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혀 서울 서대문 형무소에 끌려 온 고등학생 신기철(77)은 옥 창살 너머로 이런 생각을 했다. 3년 여 옥살이 하고 1941년에 자유의 몸이 된 신씨는 그때부터 우리말 사전 만들기에 몰두했다.
그의 이름이 낯설다면 74년에 삼성출판사에서 나온 「새 우리말 큰사전」을 떠올리면 된다. 지금은 작고한 아우 용철씨와 함께 낸 두 권짜리 이 책은 30만 질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 사전. 당시 막 출간된 국어학자 이희승씨의 사전보다 인기가 좋았고, 이희승씨 역시 칭찬을 아끼지 않은 사전이었다.
신씨는 우리말 사전 이후 22년 동안 「민족문화대사전」 만들기에 매달려 최근 원고를 마무리했다. 200자 원고지 13만 장, 책으로 내면 12, 13권은 족히 되는 분량이다. 그동안 후원자도 없이 10억원에 가까운 사재를 쏟아부었다.
몇 해 전 정신문화연구원에서 분량이 더 많은 민족문화사전이 나오긴 했다. 하지만 이 사전은 북한 지역, 인물 항목이 너무 없어 「반쪽의 관찬」사전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북한지명, 인물 등 관련 항목을 실었고 우리나라와 관계 있는 외국 사람, 동양사 관련 항목도 충분히 수록했습니다』 신씨는 자신의 사전이 정문연 사전의 한계를 넘어섰다고 설명했다.
탈고하고도 출판사를 찾지 못한 신씨를 돕기 위해 최근 「한국문화대사전 간행 추진위원회」(02_768_8188∼9)까지 구성됐다. 서울대 이광규 명예교수, 서영훈 한우리나라 사랑모임 공동대표, 한승수 전 부총리 등 명망있는 인사 100여 명이 참가하고 있다.
김범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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