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가난 탓에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맏이는 큰 댁에 양자로, 둘째는 먼 일가댁에 머슴으로, 셋째는 이름도 모르는 집의 애보기로, 피를 나눈 형제들이 기약없이 이별을 해야 했던 때가 있었다. 부모에 대한 그리움은 눈물로 풀고, 마음 둘 데 없는 서러움은 이를 악무는 오기로 풀어내던 시절. 그래도 그들에겐 희망이 있었다. 언젠가 반듯한 집을 이뤄 모두가 함께 모여살 것이라는…. 강원 동해시 김선남(38), 후남(38) 쌍둥이 자매와 영학(46), 영낙(43) 복순(34)씨등 5남매도 가난 때문에 헤어져야 했던 쓰라린 상처가 있다.어머니 홍원선(74)씨가 선남과 후남 쌍둥이를 본 것은 60년. 탯줄을 끊은 이는 큰 오빠 영학이었다. 너무나도 똑닮은 일란성 쌍둥이. 그러나 미역국조차 끓여먹을 수 없었던 가정 형편에 어머니는 울고 보채던 갓난 후남이를 안고 보육원으로 향했다. 『좋은 집에 입양되면 내가 데리고 사는 것 보다 나을 줄 알았지…』 어린 후남은 그렇게 잊혀졌다.
숙부댁으로, 먼 친척집으로 각각 흩어져 살던 남매들은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바르게 성장했고 93년 동해 어머니집에 다시 모였다. 그러나 보육원으로 보내졌던 후남은 찾을 길이 없었다. 4남매는 모두 후남을 찾아나섰다.
보육원으로부터 시작해 세월을 거슬러 가다보니 후남이 입양되어 스무살까지 살았던 곳은 춘천. 동해에서 1∼2시간거리. 지척에 두고도 소식을 몰랐던 것이 너무도 가슴아픈 순간이었다.
천신만고끝에 후남이가 미국의 사우스케롤라이나로 이민갔다는 사실을 알게된 것은 지난해 초. 마침내 같은해 3월 KBS TV 「아침마당」에 출연해 울면서 동생을 찾는 선남의 모습이 방영되었고, 이를 본 후남의 양부모가 연락처를 전해와 전화통화가 이뤄졌다.
『전화가 왔는데요. 언니다 그러는 거예요. 우리는 쌍둥이고 넌 동생이다 그러는 거예요. 너무 놀라서 말이 안나왔어요. 오빠도 있고 동생도 있다 그러는데요. 왜 버렸냐는 말부터 나왔어요』.(후남) 『첫마디가 왜 쌍둥이 중에 나를 버렸냐는 거였어요. 엄마는 전화를 못받으시고 울고만 계셨죠』.(선남)
2개월 뒤인 5월 15일 꿈에도 그리던 상봉. 쌍둥이 자매가 어머니한테 큰 절을 올리는 모습은 김포공항을 오가는 사람들의 눈물을 적셨다. 후남은 38년동안 불러보지 못했던 어머니, 언니, 오빠를 수도 없이 불러댔다. 딸 단비(11)는 이모 외삼촌 동생이 생긴 것이 마냥 즐거워 한국을 떠나고 싶어하지 않았지만, 2년뒤 다시 올 것을 기약한 채 후남은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스무살때 고국을 떠나던 날은 눈물범벅이었어요. 날 버린 이 나라 이 땅에 다시는 안온다는 생각을 하고 떠났죠. 그런데 이제는 마음이 다르네요. 가족을 선물받고 떠나는 길이니까요』. 미국으로 떠나던 후남씨가 남긴 말이다. 글=허윤정(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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