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로 서거 89주년을 맞는 안중근(安重根)의사의 후손들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최근 일본에서 공개된 안의사 가족 사진(본보 3월9일자 1면 참조)에 나타난 딸 현생(賢生)씨와 차남 준생(俊生)씨는 50년대에 사망했지만 모두 5명의 자녀를 낳았다. 장남 분도생(芬道生)씨는 어려서 사망해 후손을 남기지 못했다.
준생씨의 자녀 3명은 모두 미국에 살고 있다. 교포사회에서 유명한 의사인 장남 응호(67)씨는 정력적인 사회활동을 펼치다 최근 은퇴해 새크라멘토에 거주하고 있다. 장녀 선호(70)씨와 차녀 연호(65)씨는 출가해 각각 로스앤젤레스와 시애틀에 살고 있으며 고령이어서 고국 방문은 뜸한 상태다.
현생씨의 장녀 황은주(黃恩珠·71)씨는 형제들 가운데 유일하게 국내에 거주하고 있다. 현생씨는 백범 김구(金九)선생 휘하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황일청(黃一淸)선생과 결혼, 은주씨와 은실(恩實·68·미국 텍사스 거주)씨 자매를 두었다. 78년 남편 이용문(李容文·93년 작고)씨와 미국으로 이민했지만 남편 사망 후 고국을 잊지 못해 귀국해 혼자 살고 있다. 현재 거주지는 경기 용인시 수지읍. 안의사의 조카인 안춘생(安椿生)전독립기념관장 집과 지척이다.
황씨는 후손들이 미국에 거주하는 이유에 대해 『어려서부터 줄곧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거주해 해방 후 국내에 자리잡을 곳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황씨는 고국에서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모친 현생씨의 권유로 46년 2월 이범석(李範錫)장군 부인을 따라 귀국, 이화여대 음대를 다녔다. 황씨는 『백범선생이 김활란(金活蘭)박사에게 소개 편지를 써줘 쉽게 입학이 됐다』면서 『첫 등록금도 백범선생이 마련해줬다』고 회고했다.
황씨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은 어려움의 연속이다. 상하이에서는 핍박을 피해 온 가족이 이리 저리 도피생활을 했고 결국 일본 형사에 의해 강제 이주돼 일본계 여학교에 다니며 감시를 받았다. 『할아버지 유품을 온전히 갖고 있을 정도로 안이한 형편이 아니었다』는 것이 황씨의 설명. 황씨는 26일 오전 서울 남산에서 열리는 추모식에 유족 대표로 참석한다.
이상연기자 kubr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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