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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마음] 친구어머니 기쁘게 만든 '효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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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마음] 친구어머니 기쁘게 만든 '효도비'

입력
1999.03.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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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을 시작한 큰 아이를 데리고 지난 추석에 친척 어른들께 인사를 다녔다. 그 애가 대학에 들어갔을 때 마치 친손자 대하듯 대견해하시며 용돈을 주시던 모습이 생각나 아이가 처음 탄 보너스를 어르신 용돈으로 드리자고 했다. 적은 액수에도 상관없이 어찌나 기특해 하시고 기뻐하시는지 오히려 낯이 뜨거울 정도였다.돌아오는 길에 남편과 난 『왜 여태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하며 『친척뿐아니라 친구 어머니께도 우리가 보답해야 할 나이인데』라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가 자라던 때는 너나없이 어려워 갑작스런 손님접대는 어머니들께 꽤 곤란한 일이었을텐데도 아들 딸의 친구들이 몰려오면 반가워하셨다.

마땅히 갈 곳도 돈도 없었던 우리들은 늘 친구들 집에 몰려다니며 배고프면 밥달라고 떼를 쓰곤 했다. 겨울에 몰려간 우리에게 줄 게 없다며 내놓으신 당근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나보다 나이가 많은 남편은 더욱 친구 이야기가 풍성하다.

형편이 그래도 나은 집엔 아무래도 자주 갔는데 어떤 친구 집 고깃국엔 아무리 휘저어도 고기가 없어 「소 목욕한 국」이라고 했던 이야기, 끼니때가 되어 갔는데 먹을 거리가 없다며 막걸리를 내오셔서 술로 배를 채웠다는 이야기 등은 언제 들어도 마음이 따스해진다.

항상 빠듯한 살림이라 추석과 설에 나오는 보너스를 적자 메우는데 썼었는데 이왕 결심한 김에 지난 추석부터는 말 그대로 「효도비」로만 쓰기로 했다. 빈 손으로만 찾아뵈어도 한결같이 고마워하시는 친구 어머니들께 용돈이라며 적은 액수가 담긴 봉투를 내밀었다.

머리가 당신들처럼 허옇게 세었어도 남편과 나를 여전히 까까머리, 단발머리로만 아시는 친구 어머님들은 당황해하시면서도 대견함을 감추지 못하셨다.

남편과 나는 이제 조금은 어른다워졌다는 자부심마저 생겼고 효도비를 마음대로 용도변경하지 않아 제법 떳떳하다는 만족감까지 가질 수 있어 드린 것보다 오히려 얻은 게 많았다. 돌아오는 길에 남편과 함께 웃으며 다짐했다. 「올해는 말 그대로 어른 되기」를 말이다.

/윤선주·주부·서울 서초구 반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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