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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열며]민주주의와 시장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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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열며]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입력
1999.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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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를 방문한 사람이면 대체로 두 가지 사실에 놀란다. 하나는 장엄하고 화려한 문화유산을 기초로 면면이 이어 오는 예술·문화전통과 이의 생활화이다. 사회주의 체제에서 자유시장경제와 민주주의체제로의 이행과정에서 체험하고 있는 혼란과 무질서 속에서도 오페라와 발레공연이 초만원사례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 일등문화국민임을 새삼 확인하게 한다.그러나 자유시장경제와 정치적 민주화로의 동시적 이행과정에서 배태된 경제적 도탄, 사회적 무질서와 혼돈은 제정러시아 시대의 문화적 풍요와 화려함, 그리고 소비에트공화국 시절의 장엄함과 권위가 송두리째 사라져 버린 초라한 3등 국민임을 실감케 한다. 이 두 극단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대다수 방문객들을 어리둥절하게 하는 것이 오늘의 러시아 상황이다.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정치지도자나 행정관료의 역량이나 시민의식이 축적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상에만 치우친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섣부른 노력은 이제 수포로 돌아간 느낌마저 든다.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의 꽃을 피워보기는 커녕 이의 기초를 닦는 데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대다수 국민들에게는 이제 한 마리 토끼조차 잡을 수 없다는 허탈감만 안겨주고 있는 실정이다. 초창기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애로우(Arrow)교수는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완벽한 양립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불가능성 정리」를 통하여 이론적으로 입증였으며 이 정리가 노벨상을 수상하게 된 대표적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이론은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는 민주사회와 시장의 가격메커니즘에 의하여 도모되는 효율적인 자원배분의 이상적 양립은 불가능함을 시사한다.

그러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창달을 국정의 양대지표로 내세우고 있는 국민정부의 목표는 과연 실현 가능한 것인가 하는 원초적 의문이 제기된다. 한마디로 두 명제의 이상적 양립은 불가능하지만 현실적 타협에 의한 적절한 조화는 가능하나 그 실현은 지난(至難)할 것임을 애로우의 정리는 시사한다.

대다수 선진국들은 이 두 과제의 적절한 조화를 성취하여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으나 장구한 시간에 걸친 국민들의 피와 땀의 대가가 그 밑바탕에 숨겨져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러시아뿐만 아니라 선진국의 문턱에서 주저앉은 중남미 국가들도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실패하고 값비싼 대가만을 치르고 있는 현실이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조화는 어느 정치인의 구호로만 달성될 수 없으며 정책담당자의 부단한 노력과 실천, 이에 적극 동참하려는 성숙된 시민의식이 하나 둘 숱한 기간에 걸쳐 쌓였을 때에만 가능함을 우리 모두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신정부가 들어선 이후 진행되고 있는 각종 경제구조조정과정에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철학은 과연 지켜지고 있는지 정책담당자들의 재점검을 필요로 하고 있다. 작금에 실시되고 있는 대기업간의 소위 빅딜을 중심으로 한 구조조정과정에서 권위주의와 관치경제의 과오를 범하지는 않았는지 당국자의 반성을 다수 국민들은 촉구하고 있다.

재벌의 과잉설비조정, 규모경제의 제고, 핵심전문화업종의 설정 등 빅딜의 장점보다 그 부작용 또한 만만찮은 현실에서 시장경제의 원리보다는 단기간에 가시적 성과를 노리는 정치논리가 대세를 그르치고 있지는 않은지 재점검이 절실한 시점이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권위주의와 관치금융의 전횡이 존재하였다면 지금이라도 궤도수정에 주저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정치인과 정책당국자의 지속적 실천에서부터 그 기반을 하나 둘 다져나가야 할 것이다.

이만우·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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