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인문학의 미래는 있는가? 전국 대학의 인문학과 교수들은 요즘 이런 질문을 어느 때보다 심각하게 던지고 있다. 자연과학의 기초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들도 비슷하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라서 「낡은 구호」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학자들이 그 어느 때보다 위기를 실감하는 것은 분명하다.위기는 학부제 시행과 함께 오고 있다. 「소비자(학생) 중심의 교육」, 「교육에 시장원리 도입」 등을 내세우며 많은 대학들이 3년 전부터 학부제를 시행했다. 지금은 홍익대 성신여대 등 일부 대학을 제외하고 전국 대부분의 대학들이 이 제도를 적용하고 있다.
걱정했던 일이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이른바 인기가 없는 학과, 영문학과를 제외한 대부분의 어문학과, 철학·신학과, 역사학과 등에서 배우려는 학생이 거의 없다. 서울에 있는 한 여자대학은 한 학번의 철학과 학생이 1명이고, 서울에 있는 다른 대학 신학과는 고작 2명이 한 학년 학생의 전부다. 대신 경영학과, 영문학과, 신문방송학과 등 인문·사회계열의 이른바 「쓰임새 많은」 학과에는 지원자들이 넘쳐나고 있다.
아직 학생이 없거나, 또는 적어서 학과까지 없어지는 경우는 생기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곧 그런 일도 일어날 것이라고 말한다. 중앙대 성환갑(전국대학 인문학연구소협의회장)교수는 『지방의 신생 대학이나 수익에만 몰두하는 재단의 입김이 강한 학교에서는 비인기 학과를 없앨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인문학이 마이너 학문에서 영세(零細)학문으로, 급기야는 재야(在野)학문으로 떨어질 위기』라고 했다.
문제는 대학이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교육에 시장원리를 과감하게 도입하도록 교육부가 「유도」하는 데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학생 모집단위의 광역화를 원칙으로 하는 「고등교육법 시행령」과 대학 평가제가 맞물리면서, 대학은 「자율」인 학부제를, 거의 「지시」로 받아들이고 있다. 지난해 한국독어독문학회는 「학부제를 일반화하는 것은 대학교육시스템을 크게 왜곡시킬 수 있다」고 교육부에 건의했다. 「그 문제는 대학 자율」이라는 것이 교육부 의 대답이었고 아직 바뀐 것은 없다.
중앙대 성교수는 『수강 과목이 유사하거나 겹치는 비율이 70% 가까이에 이르는 응용학문들은 학부제를 시행하더라도, 철학 사학 어문학 등 중복강좌가 5%도 안되는 학과들은 학과제가 바람직하다』고 대안을 말했다. 하지만 인문학자들은 아직은 위기를 개탄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지난해말 한국대학교육연구소가 전국 22개 대학, 523명의 교수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학부제를 반대하거나, 강행을 반대한 교수는 83.6%. 하지만 교육부에 공식적으로 학부제 재검토를 건의한 곳은 독어독문학회 정도 뿐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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