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발표회에 가보면 대체로 썰렁하다. 청중은 별로 없고 작품은 그날 한 번 연주로 사장되는 경우가 많다. 아예 탄생 신고 한번 못하고 서랍 속에 잠자는악보는 또 얼마나 많은가. 머리털이 빠지게 끙끙거리며 작품을 써봤자 연주조차 안되는 현실에 작곡가들은 의욕을 잃는다.「작곡은 고급 취미활동이다」, 「우리 음악계는 외국서 통조림을 사다 깡통 따는 일만 계속 한다. 그것도 늘 같은 걸로」. 창작음악은 관심 밖이고 익숙한 레퍼토리만 거듭 연주되는 현실을 비꼬는 자조섞인 푸념.
작곡가단체인 「21세기 악회」가 올해로 30주년을 맞았다. 현재 국내 작곡단체는 10여개. 지난 해 40주년을 맞은 「창악회」다음으로 오래 됐다. 창작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 속에, 현대음악 불모지나 다름없던 이 땅에 현대음악의 씨를 뿌리고 밭을 갈아왔다.
현재 회원은 90여명. 관현악, 타악, 전자음악, 실내악을 망라한 회원작품으로 대대적인 30주년 기념음악회를 마련, 연세대 백주년기념관과 윤주용홀에서 5차례 연주회를 연다.
22일 연세신포니에타 초청 관현악작품 발표로 시작, 25일까지 이어지는 이 행사에는 에코타악기앙상블과 일본 코지앙상블도 초청됐다. 연주곡은 21세기악회 이찬해(연세대 음대 교수)회장을 비롯해 박재열 나인용 이만방 이영조 백의현 이문승 등 총 38명의 작품으로 대부분 초연.
이찬해회장은 창작음악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촉구한다. 『우리나라 작곡 수준은 세계와 당당히 겨눌 만큼 올라와 있습니다. 여기서 외면당한 우리 작품이 오히려 외국에서 인정받는 일도 많지요』 그는 『언제까지 외국 곡만 할 거냐』며 『주요콩쿠르 지정곡이나 교향악단 정기연주회 프로그램에 국내 생존 작곡가의 작품을 넣는 일도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외국 유명단체 내한공연에는 수억원씩 쏟아붓는 기업들이 정작 우리 음악계의 미래를 책임지고 있는 작곡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인색합니까. 지난해 대만서 열린 아시아작곡가연맹 작품발표회에 갔더니 총통 부인이 명예회장을 맡고, 대만 5개 TV 공동주최로 총통 관저에서 성의를 다해 연주회를 열어주더군요. 국가가 창작음악에 그만큼 관심을 기울인다는 증거이죠』
21세기악회는 올해 3장의 회원작품 CD(관현악곡, 현을 위한 작품, 국악기와 양악기를 위한 작품)를 내고 내년부터 국제작곡콩쿠르를 열 계획이다.
『작곡가가 작품을 써서 제 돈 내고 구걸하다시피 연주해야 하다니, 기가 막히는 노릇이죠. 이번 기념음악회는 한 장도 공짜 표가 없습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작곡가로서 자존심이 상해서 안되겠더라구요』
◇기념음악회 일정=24일(수) 오후5시 전자음악, 오후7시30분 에코타악기앙상블, 25일(목) 오후5시 실내악, 7시30분 일본 코지앙상블. (02)361_3075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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