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유력일간지인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지는 3월18일자에서 구동독정권이 1970년 가을 「파우스트」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등으로 잘 알려진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의 석관을 비밀리에 열어 조사했다고 보도했다. 이같은 사실은 구동독 바이마르의 국립괴테박물관이 보관하고 있는 보고서등의 자료와 필름을 조사한 결과 드러났다는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석관덮개의 잠금장치가 고장난 것이 그 계기였다고 한다.■당시 구동독정권은 석관을 열어 유해를 꺼내서 레닌의 유해처럼 영구보존해 전시할 수 있는지를 검토했다고 한다. 그러나 보존상태가 좋지 않아 단념, 유해를 새로 염을 한 후 월계관과 함께 제자리에 안치했다는 것이다. 석관에서 유해를 꺼냈을 때 비단으로 싸여 있었는데 이를 다시 염할 때는 발포 스티롤이 주로 사용됐다고 한다. 유해의 키는 165㎝로, 생전의 키는 당시의 평균신장인 169㎝정도로 추산된다는 것.
■육신을 영구보존하려는 공산주의자들의 집착은 잘 알려져 있다. 올해로 탄생 250주년을 맞은 괴테는 그의 육신이 사후 167년만에 다시 세상구경한 것을 뭐라 할까. 서정적이면서도 환상적인 작품세계에 젖었던 그도 아마 이번사태에는 할말을 잃지 않았을까. 항상 사랑과 슬픔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면서도 혼돈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 스스로에게 더할나위 없이 엄격했던 그였기에 더욱 그러할 것이다.
■괴테는 경이적이라고 할 작품의 양과 다양함, 그리고 높은 문학성으로 셰익스피어나 톨스토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문호다. 르네상스의 다면성을 지닌 그의 문학향기는 육신의 영구보존이 아니더라도 인류와 함께 영원할 것이다. 예술의 전당이 탄생 250주년을 맞아 26일부터 4월11일까지 「괴테 페스티벌」을 마련하고 그의 작품세계를 문학사 음악사 미술사적으로 조명하는 것도 바로 이때문이다. /이병일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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