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정일/ 경희대 영문과교수「인문학의 위축」을 우려하는 소리들이 최근 부쩍 높아지고 있다. 학부제를 향한 대학 편제 조정에서 인문학 분과들의 입지가 좁아진 것은 그런 우려를 심화한 직접적인 요인이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요인은 교육, 특히 대학교육의 목표 설정에 대한 광범한 인식 변화이다.
『철학? 철학이 밥 먹여주나?』라는 어떤 대학 총장의 발언은 대학 교육의 성격과 목표에 대한 생각이 지금 어떤 방향으로 바뀌고 있는가를 잘 요약한다. 사회적으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대학은 밥벌이에 직접 도움이 될 실용적 기능교육 또는 직업교육의 장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 대학에 대한 우리 사회의 요구인 듯하다. 게다가 현 정권은 입만 벌렸다 하면 「부가가치 창출」을 들먹인다. 『철학이 무슨 부가가치를 내나?』라고 따지면 철학 같은 건 백 번 없어져야 마땅하다.
인문학의 위축을 우려하는 문제의식은 인문학 분과들의 입지 축소라는, 요즘
유행어로 표현하면 인문학의 「밥그릇」에 제기되는 위협 때문이 아니다. 기능교육은 분명 대학 교육의 중요한 부분이며 전문 지식_기술을 지닌 직업인을 배출하는 것은 대학 교육의 목표 가운데 하나이다. 문제는 그것이 대학 교육 목표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망각하는 데 있다.
직업교육이 목적이라면 대학이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아닌게 아니라 지금 대학들은 많은 부분에서 「학원화」하고 있다. 인문학 위축을 염려하는 목소리들은 바로 이 사실, 곧 「대학의 학원화」에 대한 우려이고 걱정이다. 그것은 대학의 존재이유를 대학 스스로가 소멸시키면서 여전히 대학 간판은 달고 있는 모순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문사철」(문학, 역사, 철학)로 대표되는 인문학은 『철학이 밥 먹여주나?』라고 묻는 사람에게 『당신은 왜 밥을 먹는가?』고 반문한다. 기능주의자들은 이 『왜?』를 따지는 질문 양식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지금 그런 질문은 무용지물이며 무용의 질문은 전면 폐기, 명퇴, 조정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어떻게 돈 벌까』만 있으면 됐지 『왜』는 무슨 왜? 그러나 그 「어떻게」에도 질문이 따라 붙는다는 것을 그들은 잊고 있다.
사람은 살아야 하고 돈 벌어야 한다. 어떻게 살고 어떻게 돈 버는가에 따라 인간은 인간이 되기도 하고 인간 이하가 되기도 한다. 인문학은 이 「인간 이하」를 거부하기 위한 질문, 가치, 기준, 사유이다. 이 근본적 질문을 폐기하는 사회는 「기본이 없는 사회」이다. 기본이 없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사는 것이 아니라 죽는다. 지금 우리 사회가 바로 그런 위기의 사회 아닌가? 그런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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