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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신세대] 서울대생은 권투하면 안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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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신세대] 서울대생은 권투하면 안되나요?

입력
1999.03.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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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세로 6.1m 「사각의 링」은 너무 넓었다. 「2분」은 왜 그렇게 길기만 한지.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로 겨우겨우 3라운드를 마쳤다. 예상대로 판정패. 하지만 왠지모를 뿌듯함과 자신감이 밀려든다.갸름한 얼굴의 미소년, 서울대 복싱동아리 「SABL」의 주장 진성훈(21·전기공학부3년)의 공식대회 데뷔전은 18일 그렇게 끝났다.

외양만 봐서는 권투라는 단어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안경너머 미소가 떠나지 않는 눈매에 날씬한 몸매. 이른바 「범생이」의 전형. 그러나 안경을 벗고 웃통을 제치자 그가 좋아한다는「외유내강」 네글자속의 「강」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쌕쌕 숨을 몰아대며 샌드백을 두드릴 때면 영락없는 복서다.

글러브를 낀 이유가 재밌다. 만화때문이다. 중학교부터 만화를 통해 권투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70년대 만화방을 풍미했던 「도전자 허리케인」에서 요즘 만화 「더 파이팅」「아웃복서」까지. 권투만화라면 빼놓지 않았다.

꼭 한번 해봐야지. 그러나 좀처럼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대학교 2학년, 학교생활이 지루해질 무렵 그의 눈에 창단 4년째를 맞는 서울대 복싱부가 신입부원을 모집한다는 공고가 들어왔다.

홀딱 빠져들었다. 일주일에 3번, 2시간씩의 훈련시간을 거의 빠뜨리지 않았다. 제대로 된 훈련장소 하나없이 여기저기 더부살이를 해야하는 형편. 「사각의 링」은 고사하고 샌드백도 없다. 그러나 섀도 복싱일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세계챔피언도 부럽지 않다.

동아리 역사상 처음으로 참가하는 공식대회. 제52회 전국신인복싱선수권대회 를 앞두고도 제대로 연습조차 할 수 없었다. 꽉 밀린 숙제와 시험때문이었다. 몸무게가 라이트급 한계체중(60㎏)에 3㎏초과하는 것을 전날에야 알고 하루종일 사우나에서 살아야 했다.

그렇게 힘들게 링을 밟고 흠씬 두들겨맞은 뒤 링을 내려오는 진성훈의 소감이 당차다. 『내년엔 연습을 충실히 해서 꼭 이겨야죠. 평생 권투할 생각입니다. 몸에 좋고 자신감도 생기고. 왜요? 서울대생은 권투하면 안되나요』.

/이동훈기자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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