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바구니를 만든 지 벌써 40년이네요. 색은 바랬지만 아직은 쓸만합니다』변필순(邊畢順·72·경기 과천시 별양동)할머니가 백화점이나 인근 슈퍼마켓에 갈 때면 늘 챙기는 장바구니가 있다. 한 뼘 반 남짓의 폭과 높이에 손때절은 끈, 낡고 헤어져 청회색의 제 색깔은 하늘색으로 바랬지만 할머니는 이 장바구니가 친구처럼 정겹다.
47년전, 지금은 귀밑머리가 희끗해진 딸(김옥희씨·54)의 7살 생일날 테프론 조끼치마를 선물했다. 몸피에 비해 풍성한 옷이었지만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이의 몸은 금새 치맛단을 늘여도 못입게 됐다. 『아직 입을만한 옷인데…』 넉넉지 못한 살림에 남 집어주기는 아까워하던 차, 나일론 끈으로 된 그물장바구니 속에 든 지갑을 잃어버리는 일이 생겼다. 『주저없이 실밥을 풀어 장바구니를 만들었죠』 지갑을 넣고 다녀도 소매치기의 눈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25년전, 고향인 전남 장성을 떠나 맏아들을 따라 서울로 솔가하면서도 장바구니는 챙겼다. 할머니는 백화점에서 시장보는 일이 잦아진 뒤 장바구니가 천덕꾸러기가 됐다고 말했다. 바구니속이 안보이니 의심을 받더라는 것. 『비닐쇼핑백이 못마땅했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인근 시장이나 농협매장 등에 갈 때를 제외하곤 장바구니를 쓰는 일이 점차 줄었다.
그러다 1회용품 사용이 규제를 받으면서 비닐봉투가 오히려 눈치를 받게 된 것. 요즘 변할머니는 백화점이든 어디든 장바구니를 들고 다닌다. 『내겐 반생의 친구인 셈이죠. 낡았지만 이젠 정이 들어 버릴 수도 없습니다』
변할머니는 23일부터 서울 종로구 YMCA회관에서 열리는 장바구니 전시회에 자신의 장바구니를 출품할 예정이다. 이 전시회에는 시어머니가 물려준 장바구니, 유학시절 쓰던 장바구니 등 갖가지 사연이 담긴 장바구니도 다수 선보인다. /최윤필기자 ter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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