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리 다리외세크 작·정장진 옮김/열린책들 발행 -세기말이다. 너무나 많은 정보매체에서 세기말을 논하여 이제는 식상한 세기말이다. 그 매체들이 추동해 보여주는 1세기 전의 세기말과는 달라도 엄청나게 다른 금세기말이다. 「세기말적이다」란 말의 의미를 바꿔야 할 정도로 산뜻한 세기말이요, 전 세기와는 달리 무뎌진 세기말이기도 하다.
세기말, 저 프랑스에서 건너온 「암퇘지」를 읽는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본토에서 불과 세 해 전에 나온 이 소설은 나보다 몇 살 더 젊은 여자에 의해 씌어진, 그녀의 첫 소설이다.
마치 무슨 전원풍의 이야기가 담겨있음직한 제목의 이 소설은 그러나 첫장을 펼치는 순간 철저히 그 소박한 선입견에 충격을 가해 온다. 애초에는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던 「나」는 서서히 암퇘지가 되어가는 것이다.
그 어느곳 못지않게 실직의 문제가 큰 사회적 쟁점이 되어버린 우리의 실정을 단박에 떠올리게 하는 「나」의 어려운 상황은 향수가게 취직을 불러오고, 한순간의 안도감 속에서 이미 그녀는 실존이 무화되는 몽롱한 상황 속으로 삼투되기 시작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아주 날것의 언어들로 그려진다. 그녀의 가슴은 커질대로 커지고 가게의 지배인은 그런 그녀의 육체를 요구한다. 곧이어 「나」는 임신 증후를 알게 되고 의사를 찾지만 그들은 한움큼의 솜을 그녀의 몸 속에 쑤셔넣었을 뿐이다.
특수 마사지 코스를 맡게 된 그녀는 고급 창녀로 일하며 미증유의 변화를 겪는데, 온몸이 돼지로 변해가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변신의 테마로는 우리가 잘 아는 카프카의 「변신」을 떠올릴 수 있다. 이 젊은 여성작가는 카프카의 전통에 기대면서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의 테마를 끌어댄 것은 아닐까.
이 작품의 외설성은 읽는 이를 구토케 할 정도다. 역겹다, 이런 감정이 세기말을 사는 우리들의 실존적 상황이라고 말하려는 것일까.
귀가 밝은 독자라면 돼지들이 우리 속에서 꿀꿀대는 것을 들을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럴 경우 꼭 역겹기만 하랴. 돼지들이 먹이를 먹는 광경에서 절로 미소가 나올 수 있지 않으랴. 세기말에 대해서도 이하 동문.
/정은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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