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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와 사람들] 동춘곡예단 김영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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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와 사람들] 동춘곡예단 김영희씨

입력
1999.03.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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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과 땀으로 만든 서커스를 보러오세요』21일 오후 일산신도시 주엽동 한 공터에 자리잡은 대형 가설천막 무대. 통통한 몸매가 인상적인 한 여인의 날렵한 곡예에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이 감탄사를 연발한다. 이 여인은 국내 서커스단의 원조인 「동춘곡예단」(단장 박세환·57)의 「꽃」 김영희(37)씨.

그는 동춘곡예단에서 없어서는 안될 보배다. 150㎝의 작은 키에 둔탁한 몸매로 어떻게 저런 곡예를 할까 싶지만, 의자탑쌓기 줄타기 동물조련 그네타기 체조에서부터 하찮은 대역에 이르기까지 못하는 기술이 없는 만능이다. 한달 수입 500만~700만원에 경력 30년째인 김씨는 서커스계의 최정상으로 손색이 없다.

그의 하루 일과는 아침 7시 강아지를 훈련시키는 것으로 시작된다. 목욕탕 사우나에서도 물구나무서기를 한다. 공연때와 밥먹는 시간을 빼고는 온통 곡예기술만을 생각한다. 정상의 그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그가 서커스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7세때. 우연히 동네 장터에서 본 한 서커스에 반해 따라 나섰다가 「곡예인생」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고달픈 인생이었다. 28살까지 거의 서커스단의 「노예」였다는 것이 그의 고백이다. 곡예 연습은 커녕 애보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밥짓는 일로 세월을 보냈다. 돈 한푼 못받고 힘들어 도망쳤지만 번번히 붙잡혔다. 그러다 86년 마침내 탈출했다. 100만원을 빌려 구포시장 골목에서 포장마차를 시작했다. 동춘곡예단의 박단장을 만난 것이 이때였다. 그의 재주를 아깝게 여긴 박단장의 설득으로 김씨는 마침내 「화려한 컴백」을 했다.

곡예는 말 그대로 위험천만한 일이다. 연습이나 공연중 실수로 떨어져 다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10년전 강릉 공연에서 그네타기 도중 떨어지면서 골반을 다쳤으나 공연일정 때문에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채 퇴원해야 했다. 공연중에는 무대 뒤켠 컨테이너 박스에서 먹고 자고 휴식을 취하는 고된 생활도 부지기수였다.

곡예단에서 그의 별명은 「이모」. 일년이면 열번 넘게 짐을 꾸리고 풀어야 하는 「집시인생」이지만 대부분 10~20대인 단원들에게는 어머니처럼 따뜻한 존재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런 「유랑 생활」의 힘겨움도 그는 무대에 오르면 모두 잊는다. 관객의 박수소리만 들으면 불현듯 힘이 솟는 타고난 「광대」랄까. 그러나 최근 동료 10명이 새로 창단한 곡예단으로 가고 2년간 훈련시킨 강아지 두마리를 잃어버려 속이 상해 있다.

『무대에 설 수 있는 날까지 곡예를 계속하겠다』는 그는 「곡예체육관」을 만들어 서커스를 배우고 싶은 사람들을 가르치고 싶은 꿈을 갖고 있다.

그가 소속된 동춘곡예단은 27년 목포에서 창단됐다. 60년대까지만 해도 전국 최고의 인기 서커스단이었다. 허장강 서영춘 이봉조 백금녀 심철호 남철 남성남 등 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쟁쟁한 스타들이 이 곳을 거쳐 갔다. 다른 서커스단들이 그렇듯이 지금은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수준이지만 전통과 역사가 있는 만큼 동춘의 무대는 언제나 화려하다.

이날 일산에서의 마지막 공연을 마친 그는 또다른 무대를 위해 짐을 꾸렸다. 동춘곡예단은 4월3일부터 5월9일까지 서울 어린이대공원에서 다시 무대를 마련한다.

김혁기자 hyuk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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