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전 8시30분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중앙여고 504호 대강당.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선율이 잔잔히 울려 퍼지는 가운데 530명의 신입생들이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겼다. 잠시후 학생대표가 낭랑한 목소리로 신석정시인의 「들녘에 서서」를 낭독한 뒤 김병순(59)교장이 단상에 올랐다.
『여러분은 꿈을 키워야 합니다. 공부만 잘해 사회에 나가는 것 보다는 건전한 생각에 바른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 졸업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40여분의 특강이 끝나고 다시 5분동안 사색의 시간이 이어졌다.
신학기 처음 열린 「수양회」시간. 학생들의 인성을 길러준다는 취지로 개교직후 시작돼 40년동안 한 차례도 거르지 않은 중앙여고의 「얼굴」이다.
학년별로 학기당 3차례씩 주요 인사를 초빙해 그들의 경험담과 인생관을 들음으로써 자연스레 올바른 인격형성을 도와준다. 이한빈 전부총리, 신달자 시인, 고 김동익 목사, 고 함석헌 선생 등 지금까지 강사로 참여한 사람만도 300여명.
졸업생들에게는 학생들이 수양회에서 듣고 느낀 소감을 직접 글로 적은 「개심견성」이라는 책이 선물로 주어진다. 13회 졸업생인 가수 패티김(본명 김혜자)씨는 『학창시절 받은 수양회 강의내용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풍부한 감성과 인격형성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수양회가 좋은 효과를 얻자 다른 학교에서 찾아와 견학을 하거나 이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서울 강남의 K,C여고 등에서 매월 실시하는 「인성강의」도 수양회에서 비롯됐다.
이러한 인성위주의 교육방침은 학교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바꾸고 있다. 서별관 4층의 도서실에는 대다수 학교와는 달리 영어단어를 외우고 수학문제를 푸는 학생은 찾아보기 어렵다. 「바다의 침묵」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전태일 평전」등 양서에 흠뻑 빠져든 모습이 새삼스럽지 않다.
학생자치기구에서는 자체적으로 매달 구체적인 생활계획을 세워 공동체및 시민윤리의식을 실천하고 있다. 「신발은 검정색이나 갈색 학생용 단화로 한다」(3월) 「외출, 귀가시 부모께 꼭 인사한다」(4월) 「절제하는 생활로 쓰레기를 줄인다」(9월) 「걸어다니면서 먹지 않는다」(10월).
교사들은 『2002년 무시험전형을 앞두고 올해부터 학교마다 인성교육이다 체험학습이다, 독서교육을 강화한다며 부산하지만 중앙여고는 새롭게 할 것이 없다』고 말한다. 인성교육에 밀려 입시교육은 뒷전일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올해 대학진학률도 70%로 서울에서도 상위에 속했다.
학생과 학생, 학생과 교사간에 쌓여진 신뢰는 또하나의 자랑거리인 「무감독 시험」을 가능케 했다. 학생은 물론 학부모들로부터도 호응이 좋아 새학기부터는 시험지와 답안지 배부부터 회수까지 전 과정을 학생 자율에 맡기기로 했다. 3학년 이모(17)양은 『처음에는 이런 학교가 있나 의아스러웠지만 해가 거듭될수록 동료간에 신뢰가 쌓였다』고 말했다.
김교장은 『언제부턴가 학교 교육이 입시위주 교육으로 변질돼 안타깝다』며 『지금이라도 많은 학교가 전인교육이라는 본래의 역할에 충실했으면 하는 게 교육자로서의 바람』이라고 말했다. 김진각기자 kimj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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