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숲(松林)의 바람은 소리부터 분다. 활엽수를 스치는 바스락거림이 아니라 머리 속을 씻어내는 청량한 울림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소나무숲의 바람소리는 송뢰(松뢰)라 하여 바람소리 중 으뜸으로 쳤다.경북 울진군 서면 소광리. 불영계곡의 옆줄기인 이 일대는 그 청정한 소나무 소리를 사시사철 들을 수 있는 곳이다.
백병산과 삿갓재의 1,800㏊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 아름드리 소나무가 거대한 군락지를 이루며 빽빽히 도열해 있다.
평균수령은 75년. 이중 10여그루는 500년이 넘었다. 키가 가장 큰 것은 10층 아파트 높이인 33㎙이고 평균 키는 24㎙에 이른다.
이 곳 소나무는 흔히 볼 수 있는 품종이 아니다. 몸이 곧고 껍질과 속이 붉다. 금강송(金剛松), 강송, 황장목(黃腸木)등으로 불리던 이 품종은 최근 「울진소나무」로 이름이 통일됐다.
「살아 1,000년, 죽어 1,000년을 간다」는 황장목은 왕실 건축물, 즉 궁궐을 지었던 목재이다. 조선 숙종 6년(1680년)에 이 일대의 소나무숲을 황장봉산(黃腸封山)으로 정하고 숲 전체를 보호하기 시작했다.
산 중턱에 이를 나타내는 황장봉계금표(黃腸封界禁表)가 바위에 새겨져 있다. 해방 후에도 육종림(59년), 천연보호림(82년)으로 지정됐다.
과거에는 나무를 지켜야 한다는 일념 때문에 일반인들의 접근이 제한됐지만, 이제는 울진군의 대표적인 관광상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소광리 소나무숲중 가장 인상적인 장소는 530년 된 소나무를 만나러 가는 13.5㎞의 소박한 계곡길. 지방도로(917번)이지만 시멘트포장과 비포장이 섞인 왕복 1차선 도로에 불과하다.
태백시와 영주시로 넘어가는 36번 국도가 뚫리기 전에는 태백산맥을 넘는 통로였다. 특히 동해안에서 가장 컸다는 울진의 흥부장(場)에서 나온 각종 특산물은 이 고개를 통해 대처에 전해졌다.
길은 굽이굽이 흐르는 계곡물에 바짝 붙어 산을 오른다. 티 하나 없이 맑은 물과 물에 씻긴 너럭바위가 코 앞에서 모습을 뽐낸다. 지치면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우고 손과 발을 담글 수 있다.
규모가 어마어마한 불영계곡이 멀찌감치 떨어져 눈으로만 구경할 수 있는 반면, 소광리 계곡은 직접 만질 수 있는 다정함이 큰 매력이다. 베어낸 나무를 가지런히 쌓아놓은 임업현장도 도시인에게는 새롭다.
530년생 소나무는 입산금지 바리케이드 옆 계곡 바위에 뿌리를 걸치고 있다. 천연기념물인 속리산의 정이품송(수령 약 610년)처럼 작위를 받지는 못했지만 이 곳 연봉을 호령하는 대장이다.
큰 가지가 잘리기는 했지만 높이 30㎙로 곧게 뻗어가다가 가지를 뒤튼 모습에서 신령스러움이 느껴진다.
울진=권오현기자 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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