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예산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공공부문 개혁방안을 놓고 목하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조직 개편이라는 하드웨어 개혁과 행정개혁이라는 소프트웨어 개선작업으로 요약될 수 있는 이번 공공부문 개혁안중에서 특히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것은 정부조직 개편쪽이다.공공부문 개혁이 그동안 미진했다는 세간의 따가운 눈총을 의식해서인지 몰라도 기획예산위는 이번에 어떻게든 자신들의 의도를 관철시키려고 하고 있지만 각 부처의 사활을 건 투쟁도 다채롭게(?) 전개되고 있다.
새 정부 출범 초기에 이미 정부조직개편을 했는데 불과 1년여만에 또 조직개편을 한다는 것이 무슨 논리적 설득력이 있는가라고 반문하는 「추론형」은 그래도 제법 점잖은 반론에 속한다. 우리 부처에서 차떼고 포떼고 나면 남는게 무엇이 있는가라고 노골적으로 확대지향성향을 드러내는 곳도 있고, 선거공약사항임을 들어 은근히 정치적 으름장을 놓는 곳도 있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믿음하에 이번 조직개편은 기획예산위가 예산청을 가져와서 기획예산부로 세를 확장하기 위해 공연히 평지풍파를 일으킨 것이라고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산하단체나 학자들을 동원하려는 것은 예사고, 심지어는 현재 재정난에 허덕이며 막대한 금융부채에 시달리는 언론사들에게 은근한 압력을 행사하려는 노력도 마다하지 않는다.
마치 「로비는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국민들에게 자랑하기 위해 작심한 듯하다.
그러나 무협지를 방불케 하는 치열한 파워게임 속에서 정작 진정한 공공부문 개혁은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모색하는 노력은 실종되고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책임의 상당부분은 이번 개혁작업을 주도하고 있는 기획예산위에 있다.
결론부터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기획예산위는 더 이상 이 문제에 대해 실질
적인 침묵으로 일관해서는 안된다.
물론 형식적인 측면에서 보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서 얻은 용역보고서에 조
직개편의 목표와 기대효과가 수록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론을 수렴하기 위한 공청회가 열리기도 했다. 따라서 혹자는 이미 이번 조직개편의 논리적 당위성도 다 공표했고, 진지한 토론의 장도 마련한 바 있는데 기획예산위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단 말인가 하고 반문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부조직 개편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가. 결사적으로 달려
들어 설득하고 협박하고 떼를 쓰고 해도 될까말까 한 것이 이 작업이다. 그런데 현재의 기획예산위 태도는 좋게 말하면 방관자요, 나쁘게 말하면 직무포기에 가깝다. 『외부 사람들을 사서 각 부처 경영진단을 해 보았더니 이러저러하게 고치는 게 좋다고 하더라.
그러니 당신네 부서는 없어지고 당신네 부서는 다른 부서와 합치는 게 어떻겠는가. 한 번 잘 생각해 보고 알려주면 그걸 정부안으로 해보자』 이래서야 이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겠는가.
정부조직 개편은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전체 공무원 조직을 뿌리부터 흔드는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 이미 우리는 충분히 그 조짐을 보고 있다. 따라서 기획예산위는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자신들의 계획과 그 계획의 논리적 근거 및 기대효과에 대해 낱낱이 남의 입을 빌리지 말고 직접 이야기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들의 판단을 구해야 한다.
만일 누가 들어도 백번 옳은 이야기라서 당연히 국민들이 지지하는 경우에는
기획예산위는 이를 원군삼아 정부개혁에 온갖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반대로 부실한 논거와 엉성한 계획밖에 자랑할 것이 없다면 빨리 사태를 없던 일로 하고 평지풍파에 대한 책임을 피하지 말아야 한다. 이 문제에 관한 한 적당히 눈치보며 사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전성인·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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