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일도 아무나 하는게 아니더군요. 최소한 4~5년은 배워야 제대로 알 것 같아요. 지점장 업무 못지않게 이사일도 어렵습니다』97년 외환은행 상계동지점장을 끝으로 35년 은행원 생활을 마친 이영성(李英城·56·사진)씨. 지난 해 이삿짐센터(부림익스프레스·080-641-2000)를 시작한 뒤 안정을 되찾았다. 25년동안 이사 한번 안하다가 5톤 트럭을 몰면서 이삿짐을 옮기느라 손에 굳은 살이 박혔다.
수백종류의 가전제품과 가구를 분해해 새 집에 설치해 주다보니 어느새「만물박사」가 됐다. 물론 신바람 나는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삿집 김칫독을 깨뜨려 집에서 담근 김장김치를 가져다 주기도 하고 값비싼 어항을 박살내 이사비를 제대로 받지 못한 적도 있었다.『단순히 짐을 나르는 일인 줄 알았는데, 한 두달 배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처음 몇 달동안은 은행 동료들이나 친지들에게 전업했다는 얘기를 꺼내지도 못했다. 교직에 있는 딸이나 검사 사위가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도 됐다. 하지만 요즘엔 골프나 즐기자던 「백수클럽」 동료들이 그를 가장 부러워한다.
『은행 문을 나설 땐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큰 과오만 없으면 노력하지 않고도 연공서열에 따라 승진할 수 있었던 은행원 생활이 퇴직 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어요』
그와 함께 퇴직한 동료 중 상당수는 아직도 새로운 일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는 자신을 거리낌없이 「사회 초년생」이라 부른다.『은행 문을 나설 때의 자괴감이 제1의 사업밑천』이라며 『앞으로 20년동안은 후회하지 않는 제2의 인생을 꾸며나갈 것』이라고 말한다. 유승호기자 shy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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