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허삼관 매혈기라는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받은 느낌은 황당함이었다. 이거, 허삼관이라는 작자가 피를 판 이야기 아닌가. 그렇다. 이 소설은 허삼관이 피를 판 이야기이다. 주인공 허삼관은 여자를 얻기 위해 혹은 병든 자식을 위해 피를 판다. 피를 판다는 것은 건강한 남자의 징표라고 굳게 믿는 어리석은 허삼관은 자신의 피를 팔아 인생의 중요한 국면을 해결해 나간다. 그의 인생관이란 단순하기 이를 데 없다.
이 소설은 어찌보면 중국의 수다한 전래설화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렇다. 이 소설은 설화의 탈을 쓴 소설이다. 작가 여화는 설화적 형식을 슬쩍 빌어 실제로는 아주 담대한 이야기들을 전개하는 것이다. 허삼관이 피를 팔아 살아가는 삶의 배경에는 중국 혁명과 문화 혁명이 전경으로 자리잡고 있고, 남의 자식인 줄 뻔히 알면서도 키우는 오쟁이진 남편의 비애가 그늘져 있다.
그 정도야 뻔한 거 아닌가, 물을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모든 좋은 소설은 낡았으면서 동시에 새롭다고. 여화의 경우 그 새로움은 일체의 심리묘사를 제거한 데서 온다. 이 소설은 일종의 미니멀리즘에 의해 구축되어 있다.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물들의 말과 행동만을 냉정하게 기술하면서 중국의 현대사를 통과해간다. 소설은 아무 것도 설명하지 않고 아무 것에도 감정이입하지 않는다. 그것에서 오는 감동은 건조하되 깊다. 거기에 중국 특유의 유쾌한 허풍이 가미된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당신 피는 이제 필요없다. 가구공장에서 돼지피 대신으로나 쓰일 것』이라는 말을 들은 늙은 허삼관은, 평생 자신의 피를 요구해 온 세상을 향해 일갈한다. 『좆털이 눈썹보다 나기는 늦게 나지만 자라기는 길게 자란다』
허삼관 매혈기(여화 지음·최영만 옮김, 푸른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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