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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소설의 새지평 `바벨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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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소설의 새지평 `바벨탑'

입력
1999.03.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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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움베르토 에코. 폭넓은 교양과 인문학적 지식을 담은 「고급 소설」로 인기를 얻는 작가. 체코의 밀란 쿤데라. 이데올로기와 권력, 사회체제를 배경으로 사랑과 성의 담론을 유려하게 펼치는 소설가. 프랑스의 크리스테바. 철학적 사유의 세계를 보여주는 여성 사상가 겸 작가. 격조 높은 유럽의 문학 수준을 국내에 알린, 그리고 대중적인 인기까지 얻은 작가들이다.이들보다 국내에서 지명도는 떨어지지만 영국 여성소설가 A.S.바이어트(63)도 세련된 문학적인 성취를 보여주는 유럽 작가군의 한 사람이다. 그는 유럽문학에서 「여성주의」(페미니즘)의 지평을 넓히는데 큰 몫을 하고 있다.

바이어트의 최근작이며 그가 쓴 작품 중 가장 큰 스케일을 보여주는 역작 「바벨탑」(이종인 옮김·전3권)이 최근 현대문학에서 번역, 출간됐다. 소설은 재능있는 한 여성이 억압적인 가정을 뛰쳐나와 겪는 현실의 역정을 다루고 있다. 『아내이고 어머니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 살고 싶다』는 노라(헨릭 입센의 「인형의 집」 주인공)의 「선언」은 이 소설에서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주인공 프레데리카는 자식의 양육권을 주장하고, 법정 투쟁을 통해 그 권리를 인정받는다. 자녀 양육은 굳이 부모가 있는 「모범 가정」에서만 훌륭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메시지. 하지만 작가는 가정을 벗어난 주인공이 겪는 성적인 방종 등의 문제도 놓치지 않았다.

주목할 것은 소설 속의 소설로 작품에서 다루어지는 낭만적인 유토피아 이야기. 「배블탑」(Babble Tower)이라는 제목의 이 이야기는 프랑스 혁명기에 소란을 피해 외진 성채에서 「만인의 평등」을 앞세워 건설된 공동체의 비극을 다루고 있다. 자녀의 공동양육과 성적인 자유라는 공동체의 이상은 부모들의 자녀 양육에 대한 욕구와 성적 타락이 불거지면서 참담하게 끝난다. 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바벨탑에 얽힌 이상과 좌절의 드라마가 이 소설에 투영되어 있다. 작가 바이어트는 여성의 현실과 이상주의를 향한 인간의 열망과 실패를 교차시키면서 새로운 공동체의 대안을 묻고 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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