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재야운동가 계훈제(桂勳梯)씨가 14일 새벽 서울 도봉구 방학동 자택에서 지병인 폐질환으로 쓰러져 서울대병원으로 옮기던중 오전 7시20분께 타계했다. 향년 78세.1921년 평북 선천에서 태어난 계씨는 일제하의 경성대 법학부 재학시설 학병거부 운동에 앞장섰으며, 해방후 서울대 문리대 학생회장 시절 백범 김구(金九)선생과 함게 남북협상에 참여했다. 그는 60년대말 3선개헌 반대투쟁위원회 상임위원, 70년대초 「사상계」편집장, 「씨알의 소리」편집위원을 지냈으며 75년부터 긴급조치 철폐투쟁에 앞장서는등 군사독재에 온몸으로 저항했다.
80~90년대에 들어서도 민주통일민주연합 의장대행, 전민련 상임고문, 자주민주통일국민회의 의장, 전국연합 상임고문 등을 지내는 등 평생을 민주화투쟁에 바쳤다. 이 과정에서 85년 노동자 투쟁현장에서 테러를 당해 장기간 입원치료를 하기도 했으며 모두 3차례 옥고를 치렀다.
계씨는 지난해 9월 급성폐렴과 골다공증으로 쓰러져 서울대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았으나 치료비를 감당하지 못해 지난 1월 퇴원한 후 1주일에 한번씩 통원치료를 받아왔다. 그의 투병소식에 재야를 중심으로 모금운동이 펼쳐져 수천만원이 답지했으나 병세가 호전됐다며 모금액의 대부분을 생명운동기금으로 내놓는등 죽는 날까지 청빈한 삶을 살았다.
그의 타계소식을 접한 재야운동가들은 『통일이 될 때까지 눈을 감지못하겠다고 했는데…』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진주(金鎭珠·69)씨와 아들 여곤(汝坤·29·부산 고신대 의대 4년)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 병원 영안실.(02)3675-0299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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