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학생반성문 쓴 경관] "상부서 독촉, 맘고생끝 대필을..."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학생반성문 쓴 경관] "상부서 독촉, 맘고생끝 대필을..."

입력
1999.03.13 00:00
0 0

11일 저녁 관악경찰서 기자실에 나타난 이 경찰서 정보과 이모(48)경사는 침울한 표정으로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고백했다. 『서울대 총학생회 간부가 총리실에 제출했다고 알려진 반성문은 사실 제가 임의로 작성한 것입니다. 반성문에 찍힌 학생 도장도 제가 파서 찍은 것이고요…』이경사는 지난달 26일 서울대 졸업식에 참석한 김종필(金鍾泌)총리의 수행차량 앞유리를 일부 학생들이 파손한 사건과 관련, 총리실 등 상부에서 『해당 학생을 찾아내 변상금과 함께 반성문을 받아오라』고 지시받았다. 하지만 총학생회와 해당 학생들이 이같은 요구에 응할리 만무했고, 상부의 독촉에 못이긴 이경사는 고심끝에 「반성문 대필」을 생각해낸 것이다.

관내에 대학이 있는 일선 경찰서는 대개 「학원반」이라는 조직을 두고 있다. 대학의 전반적인 동향을 파악하고 시위 등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것이다. 학원반은 총학생회와 겉으로는 반목하는 사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묘한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경우가 많다. 서로에게서 얻어내야할 정보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경사는 바로 서울대를 맡고 있는 학원반장. 본인의 표현대로라면 『학생들과 친분을 쌓기 위해 6년동안 휴가 한번 간 적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일해왔다. 이런 친분관계때문에 이례적으로 총학생회 간부가 지난달 28일 이경사와 함께 경찰서를 찾아와 폭력사태에 대해 사과의 뜻을 전했다. 이경사는 총학생회 간부의 묵인아래 자동차 수리비 30만원을 직접 마련하기도 했다.

그러나 총리실은 경찰에게 끝까지 학생들이 직접 작성한 반성문을 요구했다. 경찰로서야 반성문을 받아야할 의무나 권한이 없었지만 상부 지시에 약한 경찰 조직의 특성상 모든 압력은 이경사에게 돌아왔다.

학생들의 졸업식 참석반대로 체면을 구긴 총리에게 학생들의 반성문을 「선물」하려던 비서진들의 과잉충성과, 권한 밖의 일을 떠맡고도 아래로 지시만 하는 경찰 수뇌부의 무능이 한 경찰관에게 어이없는 일을 하게 만든 것이다.

이경사는 『학생들의 반대분위기가 심상치않아 총리의 참석을 만류하는 보고서를 수차례 올렸다』면서 『하지만 결과적으로 모든 도의적 책임은 내가 지겠다』며 기자실을 떠났다. 이상연기자 kubrick@hankookilbo.co.kr

(C) COPYRIGHT 1998 THE HANKOOKILBO -

KOREALINK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