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냐 사상이냐」소설 「임꺽정」의 작가 벽초(碧初) 홍명희(洪命憙,1888-1968) 문학비를 둘러싸고 보훈단체와 문학단체가 때아닌 이념 논쟁을 벌이고 있다.
충북 민예총과 충북도내 문인들이 벽초의 문학정신을 기리기위해 지난해 10월 벽초의 생가가 있는 충북 괴산군 괴산읍 제월리에 홍명희 문학비를 건립한데 대해 괴산지역 보훈단체들이 벽초의 전력을 들어 철거를 요구하고 나선 것. 괴산지역 상이군경회, 전몰군경유족회, 전몰군경미망인회등 3개 보훈단체는 12일 문학비 철거를 위한 주민 1,000명 서명운동에 들어갔다.
이들은 서명운동이 완료되는 다음달말께 충북 민예총등에 서명서를 보내 현충일까지 문학비를 자진 철거해 줄 것을 요청키로 했다.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강제 철거한다는 방침까지 세웠다. 『한국전쟁의 상처가 아직 가시지 않았는데 자진월북해 부수상까지 지낸 인물을 기린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게 이들 단체의 주장.
이에 대해 문학비 건립에 앞장선 충북민예총과 괴산문학회등은 『벽초의 개인적 사상과 행적이 아닌 그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문학비를 건립한 것』이라며 「철거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충북민예총 문학위원 김승환(金昇煥·충북대국문과)교수는 『보훈단체 회원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이데올로기의 잣대로 한 시대의 문학가를 폄하해서는 안된다』며 『분단문학의 극복 차원에서라도 벽초에 대한 재조명이 더욱 활발해져야 한다』고 이해를 촉구했다.
역사소설 「임꺽정」은 민중의 삶을 탁월하게 재현, 근대 한국 리얼리즘 소설의 전형이자 민족문학사에 남을 불후의 명작으로 평가되는 만큼 문학자체로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단체의 갈등이 깊어가자 관계기관들도 괜한 오해를 살까봐 무척 조심스런 눈치다. 괴산군 관계자는 『금강산에 왔다갔다 하고 미전향 장기수까지 풀어주는 세상에 굳이 과거 전력을 들출 필요가 있겠느냐』면서도 『양측이 알아서 타협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충주 보훈지청은 『예민한 사안인만큼 뭐라 말할 수 없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귀국, 괴산에서 3·1만세운동을 조직하고 신간회결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벽초는 해방후 좌익운동에 몰두하다 48년 김구(金九)선생을 따라 남북협상을 위해 월북, 북한에서 최고인민회의 부의장과 IOC위원, 내각 부수상까지 지냈다. 소설 「임꺽정」은 그의 월북전력때문에 87년 납·월북작가 해금조치 이전까지 40년간 금서로 분류됐었다.
청주=한덕동기자 ddhan @ hankookilbo. co. kr
벽초문학비는 충북민예총이 전국의 문인들과 역사학자들로부터 기탁받은 성금 1,500만원을 들여 지난해 10월 17일 건립됐다.
화강암의 비는 높이 1.5m, 너비 1.2m, 두께 70㎝이며, 주위에 높이 3m, 지름 30㎝의 원통형 기둥 5개가 있다. 비의 앞면에는 벽초의 얼굴 초상화와 소설 「임꺽정」의 집필의도를, 뒷면에는 독립운동에 몸을 바쳤던 벽초의 일대기를 적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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