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31일 금융감독위원회는 미국의 뉴브리지 캐피털에 제일은행을 매각하기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연내매각이라는 약속시한에 쫓겨 너무 서두르는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으나, 약속을 지킴으로써 국내외에서 신뢰도를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었다. 이후 양측은 최종계약을 4월말까지 마무리하기 위해 자산실사 작업과 구체적인 가격산정 기준등을 놓고 협상을 계속하고 있다.이 과정에서 돌출변수들이 튀어나오고 있다. 어느 정도의 의견 차이는 예상했었으나 조(兆)단위로 매각금액을 더 받느냐, 덜 받느냐는 논란이 벌어지는데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가격을 1조∼2조원 더 깎아준다는 것은 결국 국민의 세금을 그만큼 더 쏟아붓는 일이기 때문이다.
당초 제일은행은 너무 싸게 팔았다. 가격할인은 특히 국제금융시장에서 매각시한을 지켰다는 평판을 얻기 위해 정부가 어느 정도 감수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이같은 헐값 매각은 얼마 후 서울은행 매각조건과 비교되면서 더욱 확연하게 드러났지만, 그래도 제일은행 매각 당시에는 국제적 신뢰를 쌓기 위해 이 정도 희생은 치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이제와서 조단위의 추가할인문제가 또 불거지는 것에 대해서는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원가이하의 할인에도 문제가 있는데 어떻게 「떨이 세일」 하듯 계속 깎아준단 말인가. 이 문제는 대출자산의 시장가치 평가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둘러싼 이견이다. 뉴브리지는 「미국 방식」으로 평가하는 게 당연하다는 입장이고, 금감위는 한국의 현실을 감안해 금감위의 방식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양해각서에서 이 부분을 분명하게 짚지 못한 실책이 일부 있지만, 이제부터라도 금감위는 제일은행 매각가격을 추가할인하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협상을 신중하게 잘 마무리해야 한다. 지금까지 제일은행의 자기자본비율(BIS)등 모든 경영지표를 금감위 기준으로 평가했고 이를 토대로 뉴브리지와 협상해 왔으므로 대출자산 평가도 이 기준으로 하는 것이 논리적으로도 일관성이 있다고 본다. 유독 대출자산 평가만 미국식으로 하자는 것이 도리어 이상하다. 심지어 서울은행을 인수할 영국의 HSBC는 대출자산을 하나도 깎지 않고 장부가격 그대로 평가하고 있다. 정통 금융자본이 아니라 고수익을 좇는 투자펀드인 뉴브리지의 치밀한 공략에 잘 대응하여 엄청난 국민세금을 잘 방어하는 것이 금감위의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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