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한 시장경제에 맡기는 것이 옳을까, 아니면 세계화(Globalization)된 작금의 여건상 정부등 공공부문의 개입을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까.』8일부터 이틀간(현지시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아시아유럽회의(ASEM) 국제회의에서 경제발전 전략을 놓고 벌인 논쟁점의 화두다. 전자가 미국식 접근방법이라면 후자는 유럽식 대안이다. 덴마크 정부와 한국정부가 공동개최한 이번 ASEM회의의 주제는 「국가와 시장(State and Market)」이었다.
덴마크가 아시아의 많은 국가중에서 한국을 공동개최국으로 선택한 의미는 각별하다. 우선 50년만의 정권교체가 유럽인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던 것 같다. 한때 「탄압받는 인권」의 상징이었던 김대중대통령의 개인적 인기 또한 이 지역에서 무시할 수 없다. 특히 그가 국정지표로 표방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은 이곳 사회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국가신인도 제고라는 측면에서 볼 때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회의에는 세계적 재정경제학자이며 분배문제 전문가인 옥스퍼드대학의 안토니 애트킨슨교수등이 기조연설을 했고 폴 뉘릅 라스무센 덴마크총리와 한덕수 통상교섭본부장이 공동으로 개막사를 했다. 한 본부장은 개막사에서 『97년의 경제위기는 규모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투명성 부족과 부패로 인해 유연성과 경쟁력이 떨어져 일어났다』며 『다행히 개혁에 대한 명확한 비전을 가진 새로운 지도자를 맞아 사회 전분야가 다시 시장경쟁원리를 도입하고 결정과정의 민주화를 실천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사회발전을 위한 정부 및 민간부문의 역할」이란 실질적 토의 의제가 말해주듯 이번 코펜하겐 회의는 마치 미국식 시장경제 철학에 대한 성토장을 방불케 했다. 회의는 미국식 경쟁지상주의가 빈부격차를 더욱 심화하고, 실업을 양산하며, 인간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환경문제를 야기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회의는 또 효율성만 강조하는 미국식 시장경제는 공동체 삶의 붕괴를 가져오고 결과적으로 갈등양상을 증폭시켜 세상을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양상으로 변모시킬 수 있음을 경고했다. 그래서 그들은 실업자구제 못지않게 근로기준법의 엄격한 적용, 최저임금제의 보장등 공공부문에 대한 정부의 일정한 개입이 불가피하다고 보았다.
폴 닐슨 덴마크 개발협력장관의 주제발표에서 이같은 입장이 명확히 드러났다. 그는 『시장을 「인간적」으로 만드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며 시장경제와 「시장적 사회(Market Society)」를 구분해 『시장경제는 환영하나, 사회정의와 평등을 해칠 우려가 있는 시장적 사회는 반대한다』고 했다. 시장지상주의가 더이상 경제의 만병통치약이 아님을 선언한 셈이다. 시장중심의 미국식 자본주의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귀기울여야 할 대목이다. 정부도 이제 경제발전 전략에 대한 명확한 밑그림을 내놔야 할 때다. 미국식 시장경제방식을 고수할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한국적 제3의 방식(Third Way)을 채택할 것인지 지금부터라도 실질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번 회의엔 이밖에도 김민석(국민회의), 맹형규(한나라당) 의원을 비롯, 제3분과위원장을 맡아 회의를 이끈 장헌준 에너지경제연구원장, 이원덕 노동연구원 부원장, 김병주 통상전문관등이 대표로 참석했다. 특히 한 수석대표등 우리 대표단의 「준비된 자세」와 현지공관의 빈틈없는 준비는 공동개최국으로서 우리의 위상을 한층 더 높이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코펜하겐=노진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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