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신사동 청학빌딩은 태어날 때부터 죽음을 예고한 건물이다. 정해진 수명은 10년. 97년 11월에 완공했으니까 2007년에 건물로서의 임무가 끝난다.청학빌딩이 건축가들의 한결같은 소망이라 할 수 있는「영속적 건축물」이 되길 거부한 이유는? 원래 도산공원을 면해 있는 이 땅 한 쪽엔 골프연습장으로 쓰는 3층 건물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개발 논리로 보면 호텔이나 지어야 적합한 넓은 땅이었다. 기존 건물을 철거한 후 재건할 것인가, 아니면 리노베이션(개조)할 것인가? 건축가 함인선(40·인우건축 대표)씨는 큰 건물 짓기엔 자금이 없으면서, 초토세에 시달리고 있는 건축주에게 개발 시점이 올 때까지 사용할 「징검다리 건물(interim project)」로 개조하자고 강력히 제안했다.
물론 시한부 건물에 큰 돈을 들일 필요는 없었다. 10년 후 감가상각을 완전히 덜어버릴 수 있도록 최소한의 공사비로 건물을 짓기로 했다. 이를 위해 함씨는 기존 3층짜리 건물을 철골만 남긴 채 해체, 2층을 추가한 5층짜리 건물을 짓기로 했다. 건축물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벽 자체를 없애고 생존에 필수적인 골조만으로 건물을 짓기로 한 것이다. 철골, 철근콘크리트, 유리만을 도입, 당시 평당 250만원선이던 초기비용을 170만원으로 줄일 수 있었다.
건축가가 가장 아끼는 부분이라 할 수 있는 벽(입면)을 비운 하이테크 빌딩은 인체로 따지면 피부(표면)는 없고 뼈대(골조)만 있는 투명한 건축물이다. 『이렇게 큰 규모의 건물이 두꺼운 벽으로 막혀 있을 때 지나가는 사람이 건물에 대해 느낄 거부감을 생각해보세요』 이 건물은 지금까지 자신의 이미지를 넣기 위해 몰두해 온 건축가들에게 도시 가로건축의 사회적 역할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 건축물에도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함씨는 『모든 재료를 10년짜리 경량으로 선택해 지난 여름 태풍이 찾아 왔을땐 불안했다』며 『10년짜리 건물에 100년 이상 버틸 재료를 사용할 필요는 없지만 안전율을 어느 정도로 두어야할지 수명공학에 대한 기준 연구자료가 없어 아쉬웠다』고 말했다.
기대한대로 골프장 일식집 수입차 수입가구전시장 등이 들어와 상업적으론 대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건물 전면을 울긋불긋 가리고 있는 간판들은 건물 을 살리려면 간판 문화 역시 건물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송영주기자 yjsong@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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