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교장의 자살을 계기로 일어난 「기미가요(君ガ代)」 논란이 일본에서 수그러 들 기미가 없다. 일본 정부가 「히노마루(日ノ丸)」와 함께 기미가요제창을 법제화 할 방침을 밝힌데 대해서도 다양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히노마루의 국기화는 그렇다 치더라도 기미가요가 국가가 될 만한 「자격」이 있느냐, 법제화의 현실적 목적이 무엇이냐에 대한 논란이 거세기만 하다.
◆자격
애초에 히노마루와 기미가요에 대한 일본 국민의 반발은 전쟁의 악몽을 연상시킨다는 데서 비롯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이같은 반감은 많이 희석됐다. 특히 히노마루를 국기로 삼자는 데 대한 반론은 거의 없다.
민주당과 사민당조차 「국기로서 문제가 없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1870년 다세이칸(太政官·내각 해당) 포고가 상선기(商船旗)로 지정할 당시 규격까지 정한 역사적 경위도 있다.
그러나 기미가요는 다르다. 그에 대한 반발은 비교적 뿌리가 깊다. 전쟁의 악몽도 그렇지만 가사 내용과 국가로 인식된 역사적 경위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기미가요의 가사는 「천황의 치세는 천년 만년, 조약돌이 바위가 되고 이끼가 무성해질 때까지」라는 내용이 전부이다. 이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적 견해는 「천황이 헌법상 국민통합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국가와 국민의 번영을 비는 내용」이라는 것.
그러나 가사의 기원인 옛노래는 「천황의 치세」 대신 「우리 임금」이며 1880년 곡이 만들어진 이후로도 한동안은 천황의 장수를 비는 축일 노래로 연주됐다는 점에서 일본 정부의 견해는 설득력이 약해 진다. 「시대착오」라는 뿌리깊은 반발이 이어질 수 밖에 없다.
◆목적
법제화의 직접적인 계기는 얼마전 히로시마(廣島) 현립 세라(世羅)고등학교 교장이 졸업식에서 기미가요를 제창하라는 교육위원회의 지시와 교원 노조의 반발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자살한 사건. 따라서 법적인 근거를 부여, 교육현장의 혼란을 막겠다는 것이 법제화의 기본 동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교원노조의 반발을 고려한 일본 정부가 『법제화하더라도 교육현장에 강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면서 법제화의 목적이 흐려졌다. 야당이 교육현장 강요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는 반면 보수파는 『그럼 무엇을 위해 법제화를 하느냐』고 반발하고 있다.
특히 보수 언론은 8일 사이타마(埼玉)현 도코로자와(所澤) 고등학교의 「별도 졸업식」이나 세라고교의 「과거사 반성 수학여행」 등을 개탄하면서 학생들의 역사 인식을 위해서도 히노마루와 기미가요를 학교에 정착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도코로자와 고등학교에서는 히노마루 게양과 기미가요 제창을 하는 교장 주최의 졸업식과 학생회의 졸업기념제가 동시에 열려 학생 70%가 졸업기념제에 참석했다.
/도쿄=황영식특파원 yshwang@hankookilbo.co.kr
[일본] 히노마루.기미가요 발자취
▲58년: 문부성이 「의식에서는 국기를 게양하고 기미가요를 제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학습지도요령 고시.
▲61년: 정부에 「공식제도연락조사회의」가 발족, 국기소위원회가 설치됐으나 실질적 논의는 불발.
▲77년: 학습지도요령의 「기미가요 제창」을 「국가 제창」으로 수정, 기미가요를 국가로 해석.
▲89년: 신학습지도요령이 「입학식·졸업식 등에서는 국기를 게양하고 국가를 제창하도록 지도한다」고 의무화.
▲94년: 사회당위원장인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총리가 「히노마루」와 「기미가요」를 용인, 사회당대회에서 방침을 통과시킴.
▲95년: 일본 전교조가 운동방침에서 「히노마루·기미가요 반대」를 삭제.
▲99년: 공산당이 「히노마루·기미가요 반대」를 견지하면서도 국기·국가 법제화 필요성 인정. 세라고교 교장의 자살을 계기로 법제화 방침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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