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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재벌가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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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재벌가의 묘

입력
1999.03.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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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가(家)의 묘에 금은보화가 가득하다고?」롯데 신격호(辛格浩)회장 부친의 유골을 도굴했던 범인이 밝힌 범행동기는 사회적 이목을 집중시킨 이 사건의 「무게」와는 어울리지않게 너무나 희화적이었다. 『채소장사 하다가 망해 빚더미에 올라앉은 뒤 큰 돈 벌 궁리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우연히 서점에 갔다 「신격호의 비밀」이란 책을 발견했어요. 바로 그 때 몇 년전 신회장 부친의 묘에 금붙이와 보석이 들어있다는 소문을 들은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뒤 일부 재벌과 정치인들이 때아니게 성묘에 나서고 앞다퉈 조상묘 관리에 부쩍 신경을 쓴다는 얘기를 들으면 더욱 씁쓸해진다. PC통신에는 『이러다 조상묘에 무인 감시카메라, 경보장치를 설치하거나 청원경찰을 배치하는 사태까지 벌어질 것』이란 비아냥도 등장했다. 이 사건이 빚어낸 또 하나의 촌극이다.

부장품(副葬品)이란 옛날 왕가(王家)나 권문세가(權門勢家)의 매장풍습이었으나 사라진지 오래다. 그런데 왜 21세기를 목전에 둔 지금까지도 금은보화로 가득찬 「왕릉」이 남아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을까. 명당을 찾느라 법썩을 떨고, 법을 무시하면서 굳이 호화판 분묘를 세우는 가진 사람들의 비뚤어진 장묘의식이 그 원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번 사건이 그릇된 조상숭배 사상과 허위의식에서 비롯된 일부 부유층의 호화장묘 풍토에 대해 경종을 울렸다면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아울러 지난해 SK 최종현(崔鍾賢)회장의 화장을 계기로 확산되어 나가고 있는 화장문화가 차제에 더욱 뿌리내리길 기대해본다. 있는 사람일수록 작은 일에서부터, 그리고 주변에서부터 「청부(淸富)」의 관행을 쌓아가는 것이 불필요한 근심을 더는 길이다.

swchun@hankookilbo.co.kr

전성우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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