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천재는 단 한 편의 걸작만으로도 존재 가치가 있다』(장 뤽 고다르), 『그는 누구도 모방하지 않았지만, 우리들 누구나 그를 모방하려 법석을 떤다』(스티븐 스필버그)오손 웰즈와 더불어 미국의 대표적 감독으로 꼽히는 스탠리 큐브릭이 7일 런던 근처 하트포드셔 자택에서 타계했다. 향년 70세. 정확한 사인은 전해지지 않았으나 경찰은 「의심스런 상황은 없다」고 밝혀 자연사로 추정된다.
큐브릭은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의 영화 전통에 대항, 자기만의 주제와 영상 언어를 가진 미국의 대표적 작가주의 감독이다. 그는 과학 발달의 전리품인 우주탐사, 핵실험 등의 주제를 차갑고 기괴한 화면에 펼쳐보이면서 궁극적으로 그 모든 것들을 무위로 만들어 버리는 인류의 양심을 파헤쳤다.
「테크놀로지를 통한 광기의 언어를 만드는 감독」이라는 말은 그의 영화가 테크놀로지라는 난해한 퍼즐을 통해 「휴머니즘」이라는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할리우드에 속해 있지 않으면서도 막대한 예산의 영화를 자유롭게 찍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감독이었다.
1928년 뉴욕에서 부유한 유대인 의사의 아들로 태어난 큐브릭은 미 근대미술관(MOMA)의 필름 라이브러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독학으로 영화를 배웠다. 『영화에 대해 아는 게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본 수많은 형편 없는 영화보다는 더 나쁜 영화를 만들 수는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는 오만한 데뷔의 변(辯)처럼 그는 미국영화의 문법을 철저히 부정하면서 새로운 전통을 세워나갔다.
대표적 작품은 핵이 만들어 낼 디스토피아를 염려한 블랙 코미디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62), 「닥터…」의 주제를 심화, 「할(hal」)이라는 첨단 컴퓨터를 통해 우주에서 벌어지는 인간과 테크놀로지의 갈등을 차가운 화면에 담은 「2001:스페이스 오딧세이」(68)가 꼽힌다. 「시계태엽 오렌지(A Clockwork Orange)」(71)는 미래 사회 젊은이들의 광기와 성적 충동, 폭력 등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언어와 영상과 음악의 이율배반적 배치, 서사(내러티브)의 파괴 등 독특한 구성이 돋보이는 수작. 영국에서는 20년간 상영이 금지됐고, 미국에서도 몇장면을 삭제, 「R」등급을 받았다. 독특한 「미장센(화면배치)」은 이후 수많은 감독들의 교과서로 모방이 시도된 작품이다.
큐브릭은 주제는 물론 영화기법에서도 파격적 시도를 즐겨했다. 「배리 린든」에서 인공 조명 대신 촛불을 조명으로 사용하는가 하면, 「샤이닝」에서는 이동중에도 초점이 흔들리지 않는 「스테디 캠」을 이용, 정서적 불안을 극대화했다.
기괴한 외모 만큼 기벽을 가진 그는 인터뷰를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74년 아예 영국에 정착한 이후 미국시간에 맞춰 낮에 잠을 자고, 밤에 작업을 한다고 소문이 나기도 했다. 작품을 많이 남기지 않은 감독으로 50년 「투쟁의 날(Day of The Fight)」이후 15작품을 발표했고, 유작은 톰 크루즈, 니컬 키드먼 주연의 「아이스 와이드 샷(Eyes Wide Shut)」.
케이블TV인 캐치원(ch 31)은 「스탠리 큐브릭 추모 특별전」을 긴급 편성, 10일부터 3일간 「2001:스페이스 오디세이」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 「스파르타쿠스」를 방영한다. 박은주기자 jupe@hankookilbo.co.kr
스탠리 큐브릭 주요 영화 연표
「투쟁의 날(Day of The Fight)」 다큐 데뷔작(50년)
「두려움과 욕망(Fear And Desire)」 장편데뷔작(53년)
「영광의 길(Path of Glory)」제1차 세계대전이 주제(57년)
「스파르타쿠스(Spartacus)」메이저 영화사와의 마지막 작품(60년)
「롤리타(Lolita)」(62년)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Dr.Strangelove)」(71년)
「배리 린든(Barry Lyndon)」(75년)
「샤이닝(The Shining)」공포영화의 새로운 실험작(80년)
「풀 메탈 재킷(Full Metal Jacket)」월남전을 다룬 작품(87년)
「아이스 와이드 샷(Eyes Wide Shut)」(99년·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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