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이제는 드라마를 보며 눈물 짓고, 코미디에 웃을 수 있다.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것 같다』 청각장애인 김병찬(金炳燦·36)씨가 최근 자막(캡션) TV 방송을 본 뒤 방송국에 보낸 시청소감이다.국내의 35만 청각장애인들은 MBC와 KBS가 각각 2월 12일과 지난 3일 자막방송을 시작하자 너무나 기뻐했다. 수십년 숙원이 이뤄진 것이다. 비록 뉴스 등 전체 프로그램의 18%만이 자막을 내보내고 있지만 마치 「잃어버린 소리」 를 되찾은 듯 행복했다.
하지만 사실은 마음이 더 아프다. 차라리 방송국이 자막방송을 내보내지 않았더라면…. 김씨처럼 자막기 내장형 TV를 구입한 청각장애인은 지금까지 500여명에 불과하다. 자막방송은 보통 TV로는 볼 수 없다. LG전자가 1월 6일부터 출시한 29인치 자막기 내장형 TV가 유일한 수단이다. 가격은 105만원 선.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다수 장애인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다른 가전사는 자막용 TV를 판매조차 않고 있다.
전국 30여개 청각장애 특수학교들도 자막방송의 뛰어난 교육적 효과를 기대하면서도 비용 때문에 발만 구르고 있다. 서울선희학교 김수일(金秀一)교감은 『자막방송의 만화 프로그램을 우리 아이들이 볼 수 있다면 너무나 좋아할텐데 사정이 그렇지 못해 가슴이 아프다』며 『자막방송을 교육적으로 활용해야하지만 예산이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이 학교에는 5일 MBC와 ㈜한국스테노가 한국농아협회에 공동으로 기증한 자막용 TV 30대 중 한 대가 왔지만 교실이 30개이다 보니 어디에 놓을 지 고민에 빠졌다. 한 중소기업이 개발중인 15만원 대의 외장형 자막기가 4월중에 판매될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 역시 적지 않은 부담이다.
MBC와 KBS는 2~3년내 전 프로그램을 자막방송으로 내 보낸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아무런 사회적·국가적 지원과 관심이 없다면 35만명의 청각장애인 중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TV를 볼 수 있을까?
/배국남기자 knbae@hankookilbo.co.kr
(C) COPYRIGHT 1998 THE HANKOOKILBO -
KOREALINK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