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보기 드문 독주회였다. 스타도 아닌데, 청중이 그렇게 많다니. 세종문화회관 소강당의 430석이 꽉 차서 자리가 모자랐다. 여기서 열리는 독주회는 대부분 집안 잔치인데 이날은 표가 없어서 못팔았다. 더 별난 것은 객석 분위기가 아주 진지했다는 점이다. 악보를 넘겨가면서 공부하며 듣는 연주회라니. 4일 저녁 있었던 안희찬 트럼펫 독주회 풍경이다.안희찬은 한국의 대표적 트럼펫 연주자로 꼽힌다. 트럼펫으로 독주회를 할 만한 곡이 많지 않은데도 꾸준히 무대를 마련하는 견실한 연주자다. 이번 프로그램은 20세기 트럼펫 곡. 케팅, 하더만, 프리드만, 펜튼, 토마시의 작품으로 한결같이 까다롭고 자주 연주되지 않아 낯선 것들이다. 이중 펜튼의 「C 트럼펫과 마림바, 피아노를 위한 5악장」, 프리드만의 「무반주 트럼펫을 위한 솔루스」는 한국 초연, 토마시의 「트럼펫협주곡」은 타악기와 트럼펫을 위한 편곡판(편곡 박동욱)으로 세계 초연이었다. 프로그램의 절반을 초연곡으로 짠 의욕만으로도 이 무대는 충분히 가치있는 것이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끝 순서인 토마시의 트럼펫협주곡. 오케스트라 부분을 타악기로 편곡, 세계초연했다. 박동욱의 편곡에 대해 헨리 노웍(트럼펫·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초빙교수)은 『원곡보다 훌륭하다』고 극찬했다.
프리드만의 「…솔루스」는 트럼펫의 모든 기교를 총동원한 듯한 작품. 불규칙한 리듬, 삽시간에 바뀌는 주법과 음색…. 여기에 익살과 유머를 입혔다. 연주자는 청중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악보를 나눠줬다. 악장이 바뀔 때마다 악보 넘기는 부스럭 소리가 났다. 안희찬은 멋지게 해냈고 객석에선 환호가 터졌다.
펜튼의 「C 트럼펫…」은 트럼펫의 화려함, 마림바의 부드럽고 탄력있는 울림, 피아노의 참신한 음향이 어우러진 작품이다. 유주연(피아노), 박병철(타악기)과 앙상블을 이룬 연주는 한마디로 환상적이었다. 이처럼 좋은 음악을 왜 이제야 듣게 됐나. 위험부담을 피해 익숙한 곡만 선호하는 연주자들의 무사안일 탓에 청중들이 손해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미환기자 mhoh@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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