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원권 지폐 10장과 신용카드 4장이 들어있는 지갑을 길거리에서 주웠다면 ?』 지난달 21일 서울 강남의 한 우체통에서 발견된 지갑에는 이같은 액수의 현금과 카드, 그리고 서모(28·여·강남구 논현동)씨의 주민등록증이 들어있었다. 누군가 주인을 찾아주기를 바라며 우체통에 넣은 것이었다.같은날 오후 2시30분께 우체통 우편물을 수거한 집배원은 지갑 내용물을 확인하지 않은 채 자기 이름이 적힌 견출지를 지갑에 붙였다. 『지갑이 발견됐을 때 열어보면 안된다』는 지침에 따른 것이었다. 집배원의 손을 거쳐 우체국 습득물 처리부에 기재된 이 유실물은 다음날 강남 경찰서로 전달돼 현재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경쟁자를 「왕따」로 만들어야 살아남을 정도로 인심이 각박해진 요즘이지만 우체통은 늘 양심으로 넘쳐난다. 「양심 우체통」이다. 축협 신설동 지점이 발행한 1,000만원 짜리 당좌수표를 잃어버렸다 지난달 6일 우체통을 통해 되찾은 강모(50·도봉구 방학동)씨는 『지난해 부도가 난 이 당좌수표를 찾지 못했으면 1,000만원을 돌려받을 유일한 증거가 사라졌을 것』이라며 보이지 않는 양심의 손을 고마워했다.
98년 한해동안 강남우체국 관내 228개 우체통에 넣어진 현금, 수표, 어음등 유가물(有價物)은 총 174건에 액수로는 무려 13억원에 달한다. 금액은 적지만 지난해부터 올 2월까지 인근 서초우체국 우체통에서 발견된 현금은 26만여원, 10만원권 수표는 20장이다.
우체통 지갑중에는 일부 소매치기들이 버린 것도 있을 수 있으나 현금이나 10만원권 수표, 카드가 들어있는 지갑은 선량한 시민이 넣은 것으로 보인다. 강남 경찰서 고참 형사는 『소매치기들은 지갑속 현금뿐 아니라 10만원권 수표도 챙긴다』며 『지갑을 버릴 때도 주로 지하철 역사내 화장실 쓰레기통을 이용한다』고 말했다. 강남 우체국 관계자는 『우체통에 지갑을 집어넣는 사람은 생업에 쫓겨 경찰서에 갈 여유는 없지만 바르게 살고자 하는 소시민일 가능성이 높다』고 나름대로 분석했다. 윤순환기자 shyoon@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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