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심」(黑心)이 「농심」(農心)을 갉아먹고 있다. 『농협이 「농협 귀족」을 위한 단체로 전락했다』는 말은 오래된 얘기다. 농협의 풀뿌리 조직인 한 단위조합의 실태를 통해 비리와 부실의 현주소를 살펴본다.경기 북부 논농사 지역에 있는 중간규모의 A단위농협(조합원수 1,300여명, 직원수 45명)은 지난해말 일대 홍역을 치렀다. 수익사업으로 추진한 주유소 건축과정에서 농협 전무가 조합장 묵인아래 공사비를 2억원 가량 과다책정하고 업자로부터 1,000여만원의 뇌물을 받은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1억원 이상의 공사는 이사회 승인을 거쳐 경쟁입찰을 해야하는 절차마저 무시됐다. 노조의 거센 반발로 이사회는 전무에 대해 뒤늦게 직무정지 명령을 내렸지만 파문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 뿐아니다. 96년 농협중앙회 경기지역본부가 A농협을 상대로 실시한 정기감사 결과에 따르면 공제계약에 가입한 조합원에게 약관 대출과 일반대출로 나누어 이중 대출할 수 없는데도 1,400여만원을 빌려줘 시정지시를 받았다. 또 장기간 회수조치를 취하지 않은 문제채권은 12건, 2억여원에 달했고 1년 이상 연체중인 대출도 8,600여만원이었다. 최근에도 조합간부가 대출 커미션으로 1,000만원을 챙겼다는 의혹이 제기돼 경찰이 내사중이다.
인사 난맥상도 빼놓을 수없다. 익명을 요구한 A농협 관계자는 『전조합장중 한 명은 부당대출 요구를 거부한 직원을 잇따라 인사조치해 물의를 빚었다』며 『인사위원회가 있지만 조합장 권한이 워낙 막강해 전횡을 막을 방법이 사실상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A농협 인근의 B농협은 지난해 7월 비리를 폭로한 직원 16명에게 조합장이 해고등 무더기 중징계를 내렸다가 올초 경기지방노동위원회로부터 시정명령을 받았지만 꿈쩍도 않고 있다.
단위조합이 「문제투성이」라면 감사기능은 「허점투성이」다. 1년에 두번 실시하는 조합내부 감사는 하나마나한 수준이고, 그나마 능력을 갖춘 지역본부의 정기감사는 3년에 한번 있을 뿐이다. 지역본부 정기감사도 97년까지는 2년에 한번이었으나 구조조정 과정에서 3년에 한번으로 되레 줄었다. 일이 있을 때 수시감사를 한다고 하지만 경기 지역본부 감사팀 13명이 관내 150여개 조합에 대해 내실있는 감사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10여년간 이사직을 맡아온 A농협 민모(67)씨는 『중앙회와 단위농협이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이원화한 뒤 감독기능을 획기적으로 강화하지 않으면 농협이 농민의 단체로 거듭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윤순환기자 shyoon@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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