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때아닌 대선바람이 한창이다. 딴 바람이 아니고 바로 돈바람이다.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2000년 대통령선거가 「금권(金權) 레이스」로 변질될 것이라는 우려가 심각히 나오고 있다. 내년 3월로 예정된 민주·공화 양당의 대통령후보 지명전(예비선거)이 아직 1년이나 남아 있는데도 각 당의 후보들은 「정치자금 끌어모으기」에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 등 미 언론들은 이번 선거에 나서는 후보들이 사용하는 선거비용은 사상 최대가 될 전망이고 몇몇 후보는 벌써부터 자금력의 한계를 느껴 포기상태라고 지적한다.금권선거의 분위기를 부추기는 큰 요인은 민주당의 앨 고어 부통령과 공화당의 억만장자 스티브 포브스의 선거전략. 1월 선거운동본부를 발족시킨 고어 진영은 법정 선거자금 한도액수인 5,500만 달러를 모은다는 목표아래 벌써부터 각종 모금행사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이는 대선사상 최고액수이다. 선거 초반전에 「막강한 군자금의 위력」을 과시함으로써 민주당의 다른 경쟁자들을 탈락시켜 본선에서 여유있게 공화당 후보를 공략한다는 전략이다. 이는 96년4월 상대적으로 쉽게 예비선거를 끝낸 클린턴이 1,900만 달러의 여유자금을 갖고 있었던 반면 예비선거에서 고전을 했던 공화당의 밥 돌 후보에게는 불과 210만 달러밖에 남지 않았던 상황을 재연시켜 보자는 의도다. 같은 방식으로 이번에도 승기를 먼저 잡겠다는 생각이다.
반면 포브스는 자신의 호주머니만으로도 선거를 치를수 있는 엄청난 재력의 소유자. 74년 개정된 선거법은 예비선거에 나서는 후보들이 정책대결에 보다 신경을 쓸수 있도록 연방보조금을 주도록 돼 있다. 그러나 이번의 경우 1,300만 달러에 이르는 연방보조금을 받을 경우 그 후보자는 예비선거에서 3,350만 달러의 사용한도를 지켜야 한다. 때문에 96년 대선에서도 연방보조금을 받지않고 예비선거에서만 3,200만 달러를 쏟아부었던 포브스는 이번에도 무제한으로 선거비용을 쓸 수 있다.
이로 인해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사람은 공화당의 유력 후보인 조지 부시 텍사스 주지사. 포브스의 금권공세에 맞서 예비선거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자신도 연방보조금을 받지않고 무제한의 선거비용을 써야 하지만 1인당 1,000달러로 제한된 모금액수를 감안할때 천문학적인 수의 사람들로부터 헌금을 받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아버지인 부시 전대통령이 공화당의 「돈줄」을 끌어들이고 동생인 젭 부시 플로리다 주지사가 12만2,000명의 후원자 명단을 넘겨주는 등 일가가 진땀을 흘리고 있다.
그나마 이들은 낫다. 피트 윌슨 전 캘리포니아 주지사(공화당)와 존 케리 상원의원(민주당·매사추세츠)은 『얼마나 많은 돈을 장만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며 지난주 대권 레이스를 포기했다. 존 맥케인 상원의원은 공화당에서 가장 먼저 대선가도에 뛰어들었지만 『대선 경쟁력은 곧 돈 경쟁력』 이라고 대선을 비꼬았고, 스탠 허커비 공화당 회계담당 책임자는 『완전히 미친 선거판』 이라고 비난했다.
/워싱턴=신재민특파원 jmnews@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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