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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와 사람들] 핸들인생 62년 진짜 '프로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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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와 사람들] 핸들인생 62년 진짜 '프로기사'

입력
1999.03.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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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2세 개인택시운전 이춘화씨『무릎이 쑤시다가도 핸들만 잡으면 멀쩡해져. 죽을때까지 운전하라는 게 하늘의 뜻인가봐』

우리나라 최고령 개인택시기사로 꼽힐 이춘화(李春華·82·서울 도봉구 창동)옹은 62년동안 한번도 핸들을 놓아본 적이 없다. 스무살때인 1937년 봄 운전면허를 딴 이래 평생을 핸들대와 함께 살아 온 진짜 「프로기사」이다.

그는 공휴일인 1일에도 어김없이 자신의 「애마」에 몸을 실었다. 아침 8시 은색 쏘나타II(서울3하5874)로 거리를 나선 그는 승객들에게 습관적으로 말을 건넨다. 초등학교 아들과 함께 탄 주부에게는 『어서오세요, 아드님이 장군감인데요』라며 반긴다.

고희(古稀)를 한참 넘긴 할아버지이지만 운전기사로서는 아직도 「혈기왕성한」 청년이다. 가끔가다 「연세」를 묻는 승객에게 『80이 넘었는데 불안하면 내리시라』고 말하지만 아직까지 내린 사람은 없다. 『평생 사고라고는 접촉사고 2번뿐』이라는 그는 『밤눈도 아직까지는 생생해 운전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웃는다.

그의 핸들인생은 중학교 1년때인 193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평남 평원군 청산면 농촌에서 태어난 그는 어머니의 지극정성덕에 평양의 명문 숭실중학교에 입학했다. 『아버지는 4살때 돌아가셨지만 집에 원래 돈이 있었거든. 게다가 부모님 모두 마흔을 넘어 얻으신 하나밖에 없는 혈육이니 오죽했겠어』.

그 시절 공부만 제대로 했다면 이미 「한 자리」했을 법도 했지만 운명은 그렇지 않았다. 『옆집에 일제 닛산(日産) 트럭을 운전하는 아저씨가 살았어. 흰장갑을 끼고 담배를 꼬나문 채 트럭에 오르는 모습이 너무 멋있었지』

그 때부터 그는 공부는 뒷전으로 하고 그 아저씨의 「조수」가 됐다. 어머니도 자동차에 미친 아들의 뜻을 꺾지 못했다. 조수생활은 고달팠다. 『지금같은 자동차를 생각하면 곤란해. 시동을 걸려고 비지땀을 흘리다보면 한겨울 대동강 찬바람도 시원할 정도였거든』

그는 조수생활 6년을 마감하고 1937년 여름 독립했다. 정비능력도 겸한 「그 어려운」 운전면허시험을 단번에 통과했다. 25세때인 1942년 가을에 결혼, 2년 뒤인 1944년 봄 딸을 낳았다.

벌이도 괜찮았고 행복했다. 하지만 그의 운명은 또 한번 바뀌었다. 1·4 후퇴때 길에서 고장나 꼼짝달싹 못하던 한국군 8사단 16연대의 헌병트럭을 고쳐주면서 그 길로 「월남(越南)대열」에 합류한 것. 어머니와 처자식은 황해 중화군의 처가집에 잠시 맡겨두기로 했다.

『국군이 늦어도 열흘뒤면 다시 평양에 올 수 있다고 했어. 그 말을 믿은거지』. 그는 월남후 육군에서 운전관련 군무원으로 일하다 61년 5·16 군사쿠데타가 발생한 직후 군에서 나와 시내버스를 운전했다.

이듬해에는 딸 둘을 두고 있던 하점순(河点順·76)씨와 서울에서 재혼했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자녀가 없다. 서로의 아픈「과거」를 너무도 잘 이해했기 때문이다.

65세때인 82년부터 개인택시로 일터를 옮긴 이씨의 건강비결은 따로 없다. 그저 운전을 천직이라 여기고, 부인이 정성껏 준비한 음식은 무조건 맛있게 먹는다. 그는 IMF로 어깨가 축처진 거리의 젊은이들을 보며 『나도 이렇게 살고 있는데 그깟일로 풀이 죽으면 되나』라고 호통쳤다.

『쌀이든 뭐든 북의 가족들이 원하는 건 모두 택시에 가득 싣고 달려갈 정도의 돈은 있는데…』. 여느 이산가족과 마찬가지로 이씨는 고향의 산천과 두고온 가족을 다시 만나는 게 소원이다.

/이종수기자 jslee@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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