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노동단체가 노사정(勞使政)협의회에서 탈퇴했다. 그리고 길거리로 뛰쳐나와 대정부 강경투쟁을 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실업문제가 심각하니 고용조정도 하지말고 기업의 구조조정이나 이른바 「빅딜」도 하지말라는 것이다.온 나라가 합심을 해서 협력해도 어려운 이 판국에 도대체 어디로 가자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이들의 대안은 무엇인가. 그렇게 하면 우리 경제의 경쟁력이 회복되고 현재의 국가위기가 극복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인가.
그동안 우리나라의 노동운동은 정경유착의 단절, 재벌해체, 재벌의 문어발식 경영 탈피, 기업의 재무구조 개선과 경영합리화, 대기업의 업종전문화 등 산업의 구조조정을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 경제개혁의 선두에 서 왔던 것이다. 그런데 국난을 맞은 이 어려움 속에서 이제는 구조조정을 하지 말라고 파업을 한다니 반개혁의 앞장을 서는 것인가.
그동안 우리나라의 노동운동은 임금인상을 위해 투쟁해왔으며 그 목적을 충분히 달성했다. 지난 10년동안 미국이나 일본의 임금이 3할 정도 오르는 사이에 우리나라의 임금은 3배가 된 것이다. 이것이 갑작스러운 고비용의 근원이었고 우리 산업의 경쟁력 상실로 이어졌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산업이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저임금에서는 노동집약경영을, 그리고 고임금에서는 노동절약경영을 해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임금을 내리든지 아니면 실업을 감수하든지 해야 한다. 그런데 임금도 올리면서 해고는 하지 말라면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오늘과 같은 개방체제에서 근본적인 고용대책은 산업이 튼튼한 경쟁력을 갖는 것이라는 점을 확고히 인식해야 한다. 기업도산과 부실이 실업(失業)의 근본이라는 점은 도산한 한보와 기아 그리고 고용조정을 단행한 부실은행들에서 확인할 수 있지 않은가.
노동운동이 근로자의 고용보장을 위해 투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 방법에 있어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상황변화를 수용해야 한다.
첫째로 지난날의 보호주의 시대에는 경쟁력이 없는 산업도 생존할 수 있었기 때문에 과잉인력이 있더라도 고용을 조정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과 같은 개방체제 하에서는 경쟁력이 없는 기업은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고용조정은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다음으로 과거와 같은 인력과잉시대에는 경제성장이 고용증가로 주도되지만 지금처럼 고임금과 인력부족단계에 들어서면 고용증가는 정지되기 때문에 고용된 노동력의 생산성 증가에 의해서 이끌어진다는 점이다. 그런데 노동생산성의 증가를 위해서는 사람을 남는 쪽에서 해고하고 필요한 쪽에서 흡수하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절대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볼때 고용조정과 기업구조조정을 하지 말라는 요구는 그것이 실업을 줄이는 대책이 될 수 없으며 오히려 실업을 더욱 심화하고 장기화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현재의 심각한 실업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우리나라 실업문제의 심각성은 고용조정이 다른 나라처럼 점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모든 기업에서 한꺼번에 일어나고 있다는 점과 실업자에 대한 보장대책이 미흡하다는 데 있다. 그러므로 이 문제에 대한 대책에 노사정이 협조해야 한다.
도산위기에 있는 기업이나 외국에 팔려가는 기업 또는 「빅딜」대상 기업들의 고용조정은 근로자들이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당장 고용조정을 하지 않고도 견딜만한 기업들은 3~4년간의 계획을 세워 고용조정을 최대한 미루도록 기업쪽에서 협조해야 한다.
한편 노동시간 단축, 무급휴가, 임금의 자진삭감, 재훈련의 활용 등 고용회피 노력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그리고 실업자에 대한 생계보장책을 강화해야 한다. 이러한 일들은 싸워서 해결할 일이 아니라 노사정이 합심해서 협력해야만 될 일이다. 노동계는 이 국가위기 상황에서 어느 길이 애국하는 길이고 실업을 줄이는 길인지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다.
/박승 중앙대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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