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강제체결된 한일병탄조약(한국병합에 관한 조약)은 일본 국내법인 행정법마저 어긴 불법조약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당시 일본 사료가 발굴됐다.서지학자 이종학(李鍾學)독도박물관장은 최근 일본 황실도서관인 도쿄(東京) 국립공문서관(옛 내각문고)에서 한일병탄조약을 안건으로 다룬 1910년 8월 22일 「추밀원(樞密院) 회의필기」를 찾아내 28일 처음으로 공개했다. 이 자료의 발굴로 일본의 한일병탄조약 심의·의결 전 과정도 처음으로 밝혀졌다.
메이지(明治) 천황의 자문기구로 각료가 구성원인 추밀원은 조약이 체결된 1910년 8월 22일 오전 10시 40분부터 1시간 5분 동안 조약안을 심의했다. 일본 내각이 조약체결에 대한 메이지 천황의 최종 재가를 받아 서울 통감부에 알린 전문(전문번호:イ17)은 이날 오후 6시 30분께 도착했다.
그러나 데라우치 통감과 이완용(李完用) 내각총리대신이 조약을 체결(조인)한 시간은 이날 오후 4시로 여러 사료에서 이미 밝혀진 바 있다.
데라우치는 일본의 행정법에 따라 천황의 재가가 난 원문을 받아 조약을 체결해야 하는 데 이를 무시했던 것이다. 이는 「본 조약은 일본국 황제폐하 및 한국 황제폐하의 재가를 거친 것으로서 공포일로부터 시행한다」는 조약 제8조와 배치된다. 이관장은 이에 따라 이 조약은 「원천 무효」라고 주장했다.
서울대 이태진(李泰鎭·국사학과)교수는 『데라우치가 일본의 행정 절차를 무시하고 조약을 체결했다는 사실은 명백하다』며 『한일병탄조약 관련 일본 사료는 지금까지 불타 없어진 것으로 알려졌다』고 말했다.
건국대 이근관(李根寬·법과대)교수는 『한국 법학계는 순종 어명 누락 등을 근거로 한일병탄조약은 국제법적으로 무효라고, 일본 법학계는 우리 정부가 일본 식민법 일부를 승계한 점을 들어 유효라고 주장한다』며 『이번에 발굴된 사료는 조약의 무효성 입증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사봉기자 sesi@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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