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스트라에서 타악기는 맨 뒷줄 차지. 타악기 주자는 내내 기다리다가 결정적 순간 벌떡 일어난다. 두 팔로 큰 원을 그리며 심벌즈를 울리거나 팀파니를 두드리고 트라이앵글을 신나게 때린다. 졸던 관객은 깜짝 놀라 깬다.20세기 음악은 타악기를 전진배치했다.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은 불규칙한 원시적 리듬으로 음악사에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 뒤로 타악기는 더 이상 보조악기가 아닌 것이 됐다. 새로운 리듬과 음향을 찾다보니 타악기를 재발견한 것. 작곡가들은 타악기에서 음악 대륙의 신세계를 열어갔다. 바야흐로 타악기의 전성시대. 타악기를 위한 곡이 쏟아지고 있다.
타악기의 여왕 이블린 글레니가 처음으로 한국을 찾는다. 16일 오후 7시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은 타악기의 숲이 된다. 탐탐, 작은 북, 마림바, 드럼, 봉고 등 갖고 오는 악기의 무게만도 4.5톤. 크고 작은 수많은 타악기를 무대 가득 늘어놓고 혼자서 연주한다. 이채로운 풍경이 될 것이다. 국내 알려지지 않은 초연작을 주로 연주할 예정이어서 더욱 기대를 모으고 있다.
여왕은 귀머거리다. 12세 때 청각을 잃어버렸다. 소리를 듣지 못하는 대신 몸으로 느낀다. 벽에 손바닥을 대고 떨림으로 소리를 감지하는 것이 그의 음악훈련법이었다. 여왕은 맨발로 무대에 선다. 좀 더 잘 느끼기 위해서다. 영혼을 두드리는 그의 연주는 신비하고 황홀하다.
글레니는 영국의 자랑거리다. 그의 인간승리는 TV나 라디오 특집, 다큐멘터리로 제작됐다. 그는 아름답다. 매혹적인 외모와 카리스마적인 연주로 관객을 사로잡는 힘을 지녔다. 영혼은 더 아름답다. 국제청각장애인협회 회장으로 장애인을 돕는 데 정열을 바치고 있다. 이번 내한공연 수익금도 몽땅 한국의 장애아동을 위한 기금으로 내놓는다.
스코틀랜드 태생으로 영국왕립음악원에서 공부했다. 89년 BBC 프롬스 축제 사상 최초로 타악기 독주 무대에 섰다. 세계 유명 오케스트라 협연, 독주 외에 작곡도 하고 있다.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의 전통 타악기에도 관심이 많다. 그의 음악세계를 다룬 BBC 다큐멘터리 「위대한 여정」(Great Journey)에서는 황병기와 함께 한국 타악기를 소개하고 연주하기도 했다. 글레니는 인터넷에서도 만날 수 있다. 홈페이지 http://www. evelyn.co.uk. 공연문의·예매 (02)580_1300.
오미환기자 mhoh@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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