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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청와대]8. 노태우 비자금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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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청와대]8. 노태우 비자금 사건

입력
1999.03.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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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가면 다시 못올 수도 있으니까,걱정하지 말고. 모두들 건강 조심해』 95년 11월 15일 오후. 시계 바늘이 2시30분을 넘겼을까. 그랜저승용차에 오르기 직전 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은 아들인 재헌(載憲)씨의 손을 꼭 잡았다. 아버지와 아들. 어금니를 굳게 물은 노씨의 손을 잡는 재헌씨의 얼굴에도 비통함이 배어 있었다.이날 아침 김유후(金有厚)변호사를 통해 검찰의 재소환 통보를 받은 연희동의 식구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하릴없이 흘러만가는 시계바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연희동 참모의 회고. 『어른은 이미 구속을 각오한 표정이었어요. 우리도 벌써부터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사실 이렇게 빨리 소환될 줄은 몰랐어요. 정해창(丁海昌)전비서실장도 태국에서 열린 국제행사에 나가 있다가 소식을 듣고 그날 밤 비행기로 부랴부랴 달려왔지요. 하지만 어쩝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는 걸….참담한 심정으로 바라볼 수 밖에요』

이에앞서 15일 오전 9시35분쯤 대검 별관 1층 기자실.

『기자들이 너무 고생하는데 뭐 도와 줄 거 없나』

얼굴 보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던 안강민(安剛民)중수부장이 이정수(李廷洙)기획관을 대동하고 기자실을 갑작스레 방문했다. 수사착수 이후 처음 있는 일. (기자들)『어쩐 일이십니까, 이거 느낌이 묘한데요』

(안부장) 『…궁금해서, 식사들은 잘 하나. 나도 차나 한잔 마시며 기자실의 애로사항을 「취재」하러 왔어』

기자실 여직원이 내어 온 녹차를 천천히 마시며 5분여간 시시콜콜한 잡담을 늘어놓던 안부장. 『이제는 갑니다』. 소파에 기댔던 몸을 일으켜 세운 안부장이 두어 발걸음을 떼어놓았을까.

『아, 이건 별건 아닌데 오늘 오후3시에 노전대통령이 옵니다』

안부장이 나간 뒤 기자실은 노통의 재소환을 긴급으로 데스크에 보고하는 고함소리로 가득찼고 TV화면에는 1분만에 「노전대통령 오늘 오후 3시 재소환」이라는 큼지막한 자막이 급보로 떠올랐다.

검찰 내부에선 노씨의 1차조사후 사법처리 문제가 공론화됐다. 문영호(文永晧)과장의 회고. 『재벌들에게 확인한 뇌물액이 1,000억정도 올랐을 때 여러차례 수사팀 내부에서 난상토론이 이뤄졌어요. 우리가 참고했던 것은 일본의 록히드사건이었습니다. 다나까 가쿠에이(田中角榮)전 일본 총리는 5억엔(50억원)을 받아 구속됐는데 노씨는 1,000억 아닙니까. 당연히 구속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어요』

오후 2시48분. 대검 청사에 도착한 노씨는 『구속될 각오가 돼있느냐』는 질문에 알듯모를 듯한 미소를 남기고 중부장실로 직행했다. 보름만의 만남.

(노씨)『나 때문에 여러분들 고생을 많이 시키고 있습니다』

(안부장) 『건강은 괜찮으십니까. 그동안 마음고생 많으셨지요』

(노씨) 『좀 좋지 않았는데 약도 먹고 해서 이제 괜찮아 졌어요』

(안부장) 『국민들이 궁금해 하는 의혹이 너무 많습니다. 이번 기회에 모든 의혹을 해소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노씨) 『너무 여론이 원하는대로 맞추려 하다보면 나라가 불행해 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두번째의 대화는 그리 길지 않았지만 노씨의 대답에는 가시가 박혀 있었다.

이윽고 11층 조사실. 재벌들의 조사자료로 무장한 검찰은 「맨손」이었던 1차 조사때와 달랐다. 노씨도 모든 것을 체념한 듯 했다. 검찰이 재벌총수들의 조사결과를 들이밀면 『그사람들이 그렇게 말했다면 맞을 것』이라는 대답으로 일관했다.

수사일화 한토막. 11월 중순의 변덕스러운 날씨는 이 날도 예외가 아니었다. 오후들어 찬바람이 돌면서 제법 쌀쌀해졌다. 오후 조사가 끝나고 노씨가 김진태(金鎭太)검사와 저녁식사를 하고 있는데 최석립(崔石立)전대통령경호실장이 들어왔다. 『재헌씨가 추워서 각하의 스웨터와 코트를 가져왔는데 드려보내도 괜찮겠지요』. 수사 도중 들어온 외부 물건은 수사검사가 한차례 점검을 한 뒤 인계하는 것이 원칙. 자해(自害)성 물품이나 수사에 장애가 되는 기별이 오가는 것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김검사는 차마 잡범취급하듯 대통령의 옷을 뒤질 수 없었던지 선선히 허락했다. 노씨는 『옷을 갈아 입겠다』며 특조실 내부 화장실에 들어갔다. 특조실 화장실은 중앙에 유리가 붙어있어 안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돼 있다. 마음 한구석이 꺼림직했던 김검사는 입회계장에게 안을 살펴보라고 슬며시 눈짓했다. 아니나 다를까. 노씨가 스웨터에서 뭔가를 급히 꺼내 호주머니에 넣는 것이었다. 당황한 김검사가 자리에 돌아와 앉은 노씨에게 정색을 하고 물었다.

『호주머니에 감추신 것이 무엇입니까. 보여 주셔야 겠습니다』

노씨는 곤혹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영 내키지 않는 듯 노씨는 호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쪽지를 꺼내 책상위에 내놓았다. 또릿한 글씨로 적혀 있는 몇 한마디. 「누가 뭐라해도 우리는 아버지를 믿습니다. 아버지 힘내세요」

특별조사실에서 들려오던 컴퓨터 키판 두드리는 소리는 16일 오전 11시쯤 멈췄다. 모든 조사가 끝난 것. 안중수부장의 기억. 『노씨를 구속을 결심하기 며칠전부터 고심을 많이 했어요. 매일 밤 이정수기획관과 저녁식사 때 소주 한병을 나눠 마시며 마음을 달랬는데 체중만 빠지더군요. 영장을 들고 김기수총장에게 가서 「총장님 구속해야 되겠습니다」하고 보고 했더니 김총장은「그런가, 알겠네」하고 더 묻지 않더군요』

청와대에서도 노씨의 구속은 예정된 수순을 확인하는 의미만 있을 뿐이었다. 김영수(金榮秀)당시 청와대민정수석의 회고. 『기억에 법무부장관과 총장이 와서 「전직대통령이라도 안됩니다」하며 구속해야 한다고 보고했어요. 어디 한 두푼 입니까. 별 문제없이 싸인이 날 수 밖에요』

노씨의 구속영장은 16일 오후 1시25분 서울지법에 접수됐다. 「피의자 노태우」. 30개 기업에서 2,358억원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였다. 검찰도 경황이 없었다. 구속영장에 노씨의 한자이름을 「盧泰遇」로 잘못 적어 급히 영장표지를 재작성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영장이 법원으로 떠난 뒤 노씨에게 남은 건 구속을 기다리는 지루한 시간뿐이었다. 감시자겸 말상대로 조사실에서 노씨와 함께 있던 김검사도 가시방석이긴 마찬가지. 검찰은 차마 노씨에게 영장청구사실을 알려주지 못했다. 오후 3시쯤 보다 못한 김검사가 먹구름이 가득낀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제가 결정할 권한은 없습니다만 … 영장이 청구됐고 곧 발부될 것입니다』

『나도 짐작은 했네』. 노씨는 의외로 담담했다. 그러나 대통령을 지낸 노씨도 눈앞에 닥친 생애 최대의 시련앞에선 초조해지는 듯 자꾸 시계를 보며 답답해 했다.

(노씨)『김검사,왜 이리 자꾸 늦어지지』

(김검사)『절차가 신중하게 진행돼서 그렇습니다. 법원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기록을 보고 있을 겁니다』

6시쯤 됐을까. 노씨가 다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김검사를 불렀다. 『김검사, 내가 나갈 때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기자들도 있을텐데…』

김검사가 잠시 생각하다 이내 말을 받았다. 『뭔가 말씀은 하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요점은 간단합니다. 「잘못된 사태에 대해선 내가 전적으로 책임을 지겠다. 역사의 불행이 계속되어서는 안된다」 이 정도로 이야기 하시지요』

노씨의 마음을 읽은 것일까. 노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영장청구 5시간 26분만인 오후 6시51분 법원 영장당직 김정호(金靖鎬)판사가 노씨의 영장에 서명했다.

주임검사인 문과장이 특조실의 문을 열었다. 모든 상념을 떨어버리려는 듯한 건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되어서 지금부터 영장을 집행하겠습니다』

「땡」. 1층에 멈춰선 엘리베이터의 신호음이 울리면서 피곤한 기색의 노씨가 모습을 나타내자 사진기자들의 섬광같은 플래시가 연달아 터졌다. 노씨는 가만히 가슴에 손을 얹고 말을 꺼냈다.

『국민여러분께 정말 송구합니다. 이 사건에 대해서 나 혼자서 모든 책임을 다 안고 어떤 처벌도 달게 받을 각오입니다…제발 이제는 이 불신과 갈등을 다 씻어버리고 화해와 이해와 협력으로 새로운 정치문화를 만들어서…』

노씨는 1분30여초간의 짧은「스피치」를 남기고 서울구치소로 향하는 검찰 승용차에 올라 눈을 감았다.

노씨가 재임중 방한한 고르바초프에게 들은 것이라며 수사검사에게 말해 준 이야기. 『스탈린은 퇴임을 앞두고 후계자인 흐루시초프를 불러 봉투 3개를 주며 위급할 때마다 하나씩 뜯어보라고 말했답니다. 흐루시초프가 취임이후 정치적 위기에 처해 첫 봉투를 뜯어보니 「전임자를 격하하라」고 적혀있어 그대로 시행했다고 합니다. 2년후 또 위기가 있어 두번째 봉투를 열어보니 「언론을 장악하라」고 쓰여 있답니다. 얼마후 열어본 세번째 봉투에는 「후임자에게 정권을 물려주고 도망가라」는 내용이 들어있었답니다』

수사 검사는 당시 노씨가 이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아무런 주석을 달지 않았다고 전했다. 노씨는 무슨 생각으로 이 이야기를 했을까?

/이태희기자 taeheelee@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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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청와대] 노씨의 약점

『피고인은 노후를 위해 동방유량 신명수(申明秀)회장에게 부동산에 투자해 재산을 증식해 달라고 돈을 준 것 아닙니까』

95년 12월18일 서울지법 대법정에서 열린 비자금사건 1차 공판. 검은 법복을 입은 문영호과장이 신문말미에 노태우전대통령에게 부동산문제를 따졌다.

고개를 저으며 부인하는 노씨. 얼굴엔 낭패스런 표정이 가득했다.

(문과장)『자금을 부동산 매입에 사용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노씨)『올바른 일이라 생각하지 않지만 나중에 국가를 위해 쓰는 것을 전제로 증식된 자금을 돌려 받을 생각이었습니다』

궁색한 변명이었다. 부동산 문제는 노씨에게 「아킬레스건」과 같은 존재였던 것. 문과장의 회고. 『수사팀 내부에서 노씨의 구속여부를 논의할 때 나는 신중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대통령을 잡아넣으려면 명분이 제일 중요했어요. 명분에서 밀리면 오히려 우리가 당할 수 있기 때문이죠. 노씨가 부정축재한 걸 확실하게 입증할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부동산이었어요』

부동산을 찾아낸 일등공신은 언론이었다. 노씨의 1차소환을 전후해 언론에서는 연일 노씨의 사돈인 신회장과 동생 재우씨의 부동산에 비자금이 흘러갔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대서특필하고 있었다. 검찰 관계자의 회고. 『부동산을 찾으라는 방침은 있었지만 사실 손에 쥔 정보는 없었어요. 나중엔 우리에게도 제보가 많이 접수됐지만 언론에서 의혹을 제기한 몇몇 부동산은 가뭄에 단비같은 특급 정보였어요』

검찰이 최종적으로 찾아낸 노씨의 부동산 자금은 382억7,900만원. 검찰은 신회장을 통해 센터빌딩과 동남타워빌딩,동생 재우씨를 통해 동호빌딩과 미락냉장 신축자금 등 노씨의 부동산 은닉자금(당시 확인액 355억원)을 대부분 찾아낸 뒤 노씨를 자신있게 소환했다.

한 연희동 참모의 이야기. 『우린들 부동산에 대해 왜 안 궁금했겠어요. 하지만 부동산 같은 「디테일」한 부분을 어른께 여쭐 수도 없고,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젊은 사돈(신회장)에게 사위를 잘 돌봐달라고 준 거고, 재우씨에게는 친인척들을 잘 건사하라고 주었다고 하더군요』

검찰 관계자의 이야기. 『사실 부동산 자금은 성격이 애매하긴 했어요. 부동산에 대해 노통은 별다른 말을 안해 속내는 알수 없지요. 신회장 이야기로는 「아들을 부탁한다」고 해 받았다는 건데…글쎄요, 아들의 장래를 위한 「종자돈」으로 보기엔 너무 큰 돈 아닙니까』

쌍용그룹에 맡겨둔 200억원의 비자금이 한참 재판이 진행되던 2월초 뒤늦게 탄로난 것도 노씨의 도덕성에 결정적인 금을 가게 했다.

에피소드 한토막. 검찰은 즉시 쌍용그룹 김석원(金錫元)회장을 조사해 『노씨가 맡긴 돈』이라는 사실을 확인했지만 노씨는 구치소로 찾아간 검사에게 『내 돈이 아니다』고 딱 잡아뗐다. 노씨가 워낙 완강히 부인해 오히려 검찰이 긴가민가 할 정도였다는 것.

검찰 관계자의 이야기. 『노씨는 사과성명에서 모든 것을 다 밝혔다고 했는데 쌍용에 맡긴 200억원까지 우리가 찾아내니 난감했을 거에요. 결국 200억원을 아예 포기하고 부인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거죠. 하지만 중간다리 역할을 했던 이원조(李源祚)씨를 조사결과를 들이밀자 결국 손을 들더군요』

노씨는 왜 목돈을 별도 관리했을까. 김석원회장은 당시 검찰에서『노씨가 누구에겐가 주려다가 못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노씨가 신한은행 서소문지점의 비자금계좌에서 이 돈을 인출한 시기는 92년 11월말. 14대 대선이 목전에 있던 시기이다. 중립내각사태 등으로 「갈 돈」이 못간 것일까. 하지만 연희동측에선 이 돈의 본래 용도에 대해 입을 다문다. 물론 노씨가 대우와 한보에 맡겼던 돈은 검찰에 「자진신고」했던 것과 대비해 이 돈 만큼은 노씨가 「재기(再起)자금」으로 숨겨놨을 것이라는 설도 있다.

/이태희기자 taeheelee@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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