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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성희롱 예방지침 허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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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성희롱 예방지침 허술하다

입력
1999.0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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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부가 남녀고용평등법에 직장 내 성희롱을 규제하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날로 심해지는 음담패설과 문란해져 가는 우리의 성문화를 개선해 여성을 성적 희롱의 대상으로부터 해방한다는 의미에서 잘한 일이다.그러나 성희롱의 개념과 판단기준이 애매하기 때문에 이를 명쾌하게 하지 않으면 시행상 많은 혼란이 예상된다. 또 현행 법령들과 중복되는 경우가 많아 오히려 성범죄의 처벌을 완화하는 등의 문제도 있다.

첫째, 성희롱규제법안의 입법취지와 개념이 예방지침에 명확하게 나타나 있지 않다. 참고로 성희롱이란 농담이나 장난을 하한선으로 하고 강제추행을 상한선으로 하는 중간적 행위를 말하며 성희롱을 규제하는 것은 이성에게 성적 굴욕감을 주거나 성을 미끼로 고용상 불이익을 주어 고용환경을 악화하지 않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

둘째, 노동부의 예방지침을 보면 가슴 엉덩이 등 특정부위를 만지는 것을 성희롱이라 했다. 그러나 옷 위로 만지거나 쓰다듬는 행위와 옷 속으로 손을 넣어 그런 행동을 했을 경우를 구별해주어야 한다. 옷 속으로 희롱하는 행위는 성폭력특별법이나 형법상 강제추행죄를 적용할 수 있지 성희롱은 아니다.

최근에는 옷 위로 쓰다듬거나 만지는 행위도 강제추행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가벼운 포옹이나 어깨를 껴안는 행위, 슬쩍 지나치면서 건드리는 행위 등을 초과하여 적극적으로 만지거나 쓰다듬는다면 형법심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셋째, 성관계 강요부분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비록 말로만 성관계를 강요했을지라도 피해자가 거부하기 어려운 협박이었다면 강간죄가 성립된다. 협박의 정도가 약할 경우에도 형법의 업무상 위력·위계에 의한 간음죄가 성립된다. 따라서 성희롱으로 처벌되는 경우는 「성관계를 강요해 상대방이 이를 거절할 경우 그에게 고용상 불이익을 주거나 줄 가능성이 있을 때」로 한정해야 한다.

넷째, 성적 질문을 하거나 성적 정보를 고의적으로 유포한 것을 성희롱으로 보았으나 이는 형법상의 명예훼손죄나 모욕죄가 된다. 형법상 명예에 관한 죄는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모욕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성적 정보를 고의적으로 유포하는 행위는 성희롱 범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기보다는 형법상 명예에 관한 죄에 해당한다.

다섯째, 노동부는 성희롱의 유형으로 음란한 내용의 전화통화, 외설적인 사진이나 그림을 보여주는 행위, 팩스 컴퓨터통신 등으로 음란한 편지 사진 그림을 보내는 행위 등을 예시했으나 이같은 행동은 형법의 음란물죄를 구성한다. 뿐만 아니라 성폭력특별법 14조도 이같은 행위에 대한 처벌을 규정하고 있다.

성폭력특별법을 적용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이 내려질 것이 남녀고용특별법을 적용할 경우에는 가해자에 대한 부서전환이 이뤄지거나 징계 또는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될 뿐이다.

여섯째, 노동부의 성희롱 관련 예방지침을 보면 「본인 신체의 특정부위를 고의로 노출하거나 상대방 신체의 특정부위를 만질 경우」에 성희롱이 된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이 조항 역시 「공연히 음란한 행위를 한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는 형법 규정과 일부 중복된다.

형법상 음란죄는 주로 음란한 물건에 대한 범죄인데 반해 노동부의 성희롱 관련 법규는 음란한 행위 자체를 처벌하는 것이 목적이다. 하지만 성욕을 자극 또는 흥분케 하여 성적 수치심과 성도덕을 침해하는 음란 행위라는 점에서 노동부의 성희롱 관련 법규과 형법상의 음란죄는 차이가 없다.

성희롱으로 고통받는 사람들과 고용환경의 악화를 막기 위해 남녀고용평등법의 성희롱 관련 법규가 본래의 뜻대로 빛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개념을 정립하고 다른 법령과 중복되어 혼란을 초래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지광준 강남대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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