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정부」 1년차의 경제성적표는 우리도, 남도 놀랄 만큼 우수했다는 평가다. 구조조정의 성과도, 경기회복의 속도도 모두 기록적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바닥을 겨우 탈출했을 뿐이며 위기의 중심에서 멀어졌을 뿐이지 결코 자유로워진 것은 아니다. 2년째를 맞게 된 국민의 정부와 한국경제 앞에는 더 어렵고 복잡한 과제들이 기다리고 있다.실업난 해결
실업난 해소는 김대통령 스스로 밝혔듯, 경제정책과제의 첫번째 화두. 구조조정과정의 필연적 부산물이고 경제체질개선에 오히려 「보약」이 될 수도 있지만, 인내의 한계선을 넘어선다면 정상적 경제발전은 물론 정치·사회안정에도 치명적일 수 밖에 없다. 실업문제가 해소되지 않는 한 생존권을 위협받는 근로자들에게 무조건 고통분담동참을 호소할 수는 없는 일이고 결국 노동개혁, 노사안정, 산업평화의 큰 틀까지 위협받게 된다.
졸업생들이 노동시장으로 몰려나올 3월초면 실업자수는 200만명에 육박할 것이란게 당국의 전망. 하루벌어 하루 먹고사는 불완전 고용자들을 포함하면 실질실업자는 200만명을 훨씬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4인가족 기준으로 4가구당 1가구에는 실업자가 있다는 얘기다.
실물경기가 회복되더라도 실업문제가 저절로 풀리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재경부관계자는 『수출이 늘고 내수가 살아나면 기업들은 부채비율부터 낮추고 그 다음 설비투자를 하며 채용은 맨 나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업은 어차피 정부의 몫. 예산부족을 들먹일 게제가 아니다. 그러나 실업대책은 결코 「자선」「구휼」이 되어선 안되며 실업과 재취업의 시차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노동시장 탄력성」을 높이는 정책이 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일자리를 제공하면 가장 좋고, 그것이 어려우면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기술과 정보를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어차피 옛날같은 실업률 1% 안팎의 완전고용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선진국이 되어도 마찬가지다. 긴 안목에서 「고용의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이성철기자 sclee@hankookilbo.co.kr
도덕적 해이
지난 1년은 낡은 제도와 관행을 해체하는 과정이었고 그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물러설 곳이 없는 벼랑끝 상황이었고 집권초 강력한 리더십과 국제통화기금(IMF)이라는 거대감시세력 아래서 구조조정작업은 착실하게 진행됐고 경제주체들은 이를 기꺼이 수용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선가부터, 즉 외환위기가 벗어났다고 혹은 경기가 나아졌다고 얘기되던 시점부터 서서히 균열조짐은 나타나고 있다. 재벌을 비롯한 기득권그룹들은 시간벌기로 개혁에 저항하기 시작했고, 금융기관들은 퇴출과 감원공포에서 해방된 듯 착각하고 있으며, 모든 것이 가장 더딘 공공부문은 구조조정작업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국민들 역시 반도체 경기가 만들어낸 지표경기, 신용경색에 따른 풍부한 금융권내 유동성이 부추긴 주가상승에 도취해 일부 계층을 중심으로 흥청대는 분위기가 되살아나고 있다. 소득이 늘기는 커녕 더 줄어들 가능성이 높고, 실업은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인데 소비재 수입은 폭증하고 있다. 근로자들 역시 1년의 고통으로 인내를 끝내려는 분위기다. IMF사태를 몰고 왔던 경제주체들의 도덕적 해이가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 남은 새로운 질서의 구축작업. 건설에 비하면 해체는 오히려 쉬운 편이다. 모든 것을 쉽게 잊어버리는 고질적 망각증, 쉽게 끓었다가 쉽게 식어버리는 소위 「냄비근성」을 버리지 않는 한 위기는 영원히 탈출할 수 없다. 진짜 위기는 외환사정도, 마이너스성장도, 높은 실업률도 아닌 경제주체 내부에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할 때인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성철기자 sclee@hankookilbo.co.kr
4대개혁 마무리
국난 극복이란 지상 과제를 안고 출발한 김대중(金大中)정부는 1년동안 숨돌릴 틈없이 기업·금융·노동·공공부문등 4대 개혁을 추진해왔다. 정경유착과 관치금융, 노동시장의 경직성, 비효율적인 공공부문의 개혁없이 국가 신인도를 회복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김대중정부 1년간의 개혁은 일단 성공적으로 이뤄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4개 부문의 개혁은 정부가 스스로 인정하듯 응급수술에 불과했으며 본질적인 개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금융부문 개혁은 5개 부실은행 퇴출, 대형은행들간 합병, 제일·서울은행의 해외매각으로 일단락됐지만 이는 하드웨어의 수리에 불과하다. 국제화시대를 맞아 선진 금융기관들과 맞대결을 벌이기엔 경영기법, 첨단금융기술에서 아직도 크게 떨어져있다.
기업구조조정의 경우도 아직 갈 길이 험난하다. 지난해 정부와 5대재벌은 사실상 재벌체제를 포기하는 「12·7합의」를 해놓고도 구체적인 사안에선 아직도 지지부진한 상태다. 반도체 자동차의 대규모사업교환(빅딜)이 관련 기업들간의 이해상충으로 벌써 약속시한을 여러번 지키지않았다. 정부는 재벌체제를 사실상 해체하고 「독립된 기업들의 투명한 연합체」로 만들겠다는 목표이지만 국제통화기금(IMF)사태이후 5대재벌이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더욱 커졌다는 지적도 있다. 노동·공공부문 개혁도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못하고 있다. 노동계는 특히 「구조조정의 일방적인 희생자」라며 반발하고 있다.
따라서 김대중정부는 2년만에 국난을 극복해내겠다는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선 이같은 과제들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해야한다. 유승호기자 shyoo@hankookilbo.co.kr
구조조정 지속
『정치바람을 차단하라』
올해 정부 경제정책의 기본방향은 구조조정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2000년이후 재도약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지난해보다 거세질 것으로 예상되는 정치바람의 차단이 중요하다는 게 한결같은 지적이다. 내년 총선 등을 감안해 선심성 예산을 짜고, 실업난 해소에만 몰두해 구조조정작업을 소홀히 하거나 경기의 거품현상을 방치할 경우 경제 재도약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와 무디스가 우리나라 신용등급을 투자적격으로 상향조정하며 정치적 갈등 등을 앞으로의 「점검포인트」로 거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치바람은 곳곳에 잠복해있다. 내달에 가시화할 정부조직개편작업을 비롯, 완결이 늦어지고 있는 재벌의 대규모 사업교환(빅딜), 실업자 증가에 따른 실업대책 보완작업 등에 표를 의식한 정치권의 「입김」이 개입될 소지가 적지않다. 부분적으로는 이미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사안 자체가 정치적인 판단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치권의 이해득실에 따라 결론날 경우 부실화할 수 밖에 없다. 정부조직개편작업의 경우 이미 지난해 관련부처의 로비와 정치권의 이해가 상승작용을 일으켜 졸속으로 끝나는 바람에 1년만에 다시 손을 대게 됐다. 빅딜역시 지난해 「12·7 정부-재계 합의」이전에 정치권의 개입을 자청하는 사례까지 발생해 지지부진했었다.
정부 당국자는 『우리가 너무 자만에 빠지면서 노사분규, 기업구조조정의 지연, 정치적 갈등 등이 빚어질 경우 대외신인도는 다시 추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정희경기자 hkjung @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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