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경력에만 연연, 궂은 일을 피해 윤기나는 책상물림으로 머물기는 싫었습니다. 파는 물건이 자동차에서 정수기로 바뀐 것 뿐,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재계 서열7위인 기아그룹 부회장을 지낸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의 손아래 동서 도재영(都載榮·61)씨가 정수기 판매원으로 변신했다. 삼미그룹부회장 출신으로 호텔롯데 프랑스식당에서 웨이터로 일하고 있는 서상록(徐相祿·62)씨와 함께 전혀 새로운 「제2 인생」을 사는 그는 30여년간 기아그룹에 몸담아온 정통 「기아맨」
도씨는 기아자판 자문역을 끝으로 97년 기아를 떠난후 지난해 11월 서울 종로구 청호테크 사업단 영업소에 말단 에이전트로 취직했다. 회사측의 상임고문 제의도 마다했다. 다방과 병원등을 돌며 정수기를 팔면서 참기 힘든 수모도 겪었다. 하지만 도씨는 『노력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얻을 수 있는 세일즈맨의 생활이 더없이 떳떳하고 만족스럽다』며 「청부(淸富)인생」를 자랑했다.
젊은 사람들보다 2배이상 일한다는 각오로 뛴 그는 올해 초 5명의 에이전트를 이끄는 팀장으로 승격했다. 팀원 중 상당수는 실업의 고통을 딛고 재기에 나선 사람들. 기아의 도산을 목도한 도씨에게는 이들이 가족같고 친구같다.
월 수입은 현재 200~300만원선. 기아시절 받았던 1억원의 연봉에 비하면 적은 돈이지만 도씨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돈이다. 대기업을 이끌던 경영 수완과 몸으로 체득한 세일즈의 경험을 결합해 한국적 유통산업의 전범(典範)을 만들겠다는 야심찬 꿈을 지닌 도씨. 그는 『새롭게 주어진 인생에서 유통분야에 관한 발로 쓴 쓸만한 논문을 낼 욕심』을 키우고 있다. /최윤필기자 term@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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