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논리가 결국 개혁의 발목을 잡았다. 보건의료 개혁의 핵심으로 지적돼 온 의약분업 실시시기를 올 7월에서 1년 연기키로 한 여당의 결정은 정치적 고려에서 비롯된 흔적이 강하다. 당정은 당초 18일 국민회의 김원길(金元吉)정책위의장과 김모임(金慕妊)복지부장관간의 협의에서 의약분업 7월 강행 입장을 확정했다. 국민회의는 의보수가 조정 등 분업 실시에 따른 보완책까지 내놓았었다. 이 결정이 알려지자 즉각 의·약사 출신 국회 보건복지위 여야의원들이 들고 일어났다. 야당은 아예 24일 의약분업 연기를 명문화한 약사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며 공세를 취하고 나섰다.국민연금 파동조차 수습되지 않고 있는 와중에 다시 악재가 돌출하자 여당이 당황하며 대책 마련을 서두른 것은 당연지사. 당정은 주초 비공개 협의를 통해 『의약분업문제라도 쉽게 해결하고 넘어가자』고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한 여권 고위인사는 25일 『분업을 무리하게 강행하면 의·약사 분쟁 등 온갖 부작용이 빚어질 게 뻔하고 그러면 우리는 내년 총선에서 왕창 깨질 수 밖에 없게 된다』며 결국 「표」가 문제였음을 시인했다.
그러나 여권은 1주일만에 주요 정책을 번복함으로써 정부 여당의 정책에 대한 신뢰성을 스스로 떨어뜨렸다. 표를 의식하고 이익단체의 압력과 로비에 굴복해 개혁을 뒤로 미뤘다는 비판도 면하기 어려울 것 같다.
한편 국민회의가 의약분업 연기방침을 굳힌데 대해 주무부처인 복지부는 당정 협의를 통해 연기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이 공식적인 입장이나 당정간의 합의가 관련단체의 입김으로 1주일만에 뒤집혀 떨떠름한 표정이다.
복지부는 지난해 8월 의약분업추진협의회에서 의사·약사단체간의 합의에 따라 일반의약품과 전문의약품의 분류, 약가마진 최소화조치, 의료보험수가 조정 등 의약분업을 위한 준비작업을 해왔다. 송재성(宋在聖) 보건정책국장은 『3월 국회에서 의약분업이 연기된다면 준비작업 일정도 조정하겠다』고 말했다. 정부와 정치권에 의약분업 연기를 건의한 대한의사협회와 약사협회는 기본적으로는 의약분업을 지지하지만 7월실시는 무리이므로 충분한 준비를 통해 내년 7월1일부터 의약분업을 시행하는데는 적극 협조하겠다는 입장이다. 신효섭기자 hsshin@hankookilbo.co.kr 남경욱기자 kwnam@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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