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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강 어라연계곡, 다신 못볼지 모를 선계의 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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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강 어라연계곡, 다신 못볼지 모를 선계의 비경

입력
1999.0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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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이 될 지도 모른다는 몹쓸 상념 때문일까. 신발끈을 다시 묶고 옷깃을 여몄다. 강원 영월군 동강(東江)의 어라연(魚羅淵)계곡.태백시 검룡소에서 발원한 남한강의 물줄기가 정선을 휘돌아 영월로 향하면서 세 개의 돌산(삼선암·三仙岩)을 만난다. 봉우리 사이로 온 몸을 뒤틀어 흘러내리며 깎아놓은 작품이 동강의 허리 격인 어라연이다.

행정구역으로는 영월읍 거운리. 물 위에 섬처럼 떠있는 거대한 너럭바위와 절벽의 소나무, 비취빛 물색이 어우러진 동강의 보석이다. 직벽과 물길에 갇힌 오지여서 몇 년전만 해도 아는 사람만 쉬쉬하며 이 곳을 찾았다.

이 계곡이 영원히 물에 잠길 지도 모른다. 정부는 남한강의 홍수조절과 용수확보를 위해 이곳에 영월다목적댐을 건설할 계획이다. 환경단체등이 「결사반대」하고 있지만 정부는 「적절한 절차」를 거쳐 「하자」가 없으면 댐건설을 강행한다는 입장이다. 이르면 10월부터 공사에 들어간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산길로 돌아 들어갔는데 댐을 준비하기 위해 직선길을 트느라 강에 돌을 쌓아 가교를 만들었다. 돌다리를 건너 상류로 향하다 만지동을 200여m 남겨놓고 붉은 깃발을 만났다. 강 건너 섭사마을 뒷산에도 같은 깃발이 걸려있다.

댐건설 예정지역 표시다. 정부의 계획은 이 곳을 가로질러 높이 98m의 댐을 세운다는 것이다. 저수량은 6.9억톤, 수몰지역은 22㎢에 이른다. 만지동, 문산리는 물론 천연기념물 206호인 백룡동굴도 물 속에 잠긴다.

이 곳의 땅이름 만지(滿池)는 「물이 가득찬 호수」를 의미한다. 언제 지어졌는 지는 알 수 없지만 「댐건설로 호수가 될 운명을 타고난 땅」이라는 예언성 지명이라는 것이다.

반면 섭사(涉砂)는 「모래쌓기」를 의미한다. 「모래로 지은 댐은 결국 붕괴되고 더 큰 재앙을 가져올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 우리 조상들은 어느 편의 손을 들어주기 위해 이런 땅이름을 지었을까.

만지동을 거쳐 조각배 한 척만 덩그러니 바람에 흔들리는 만지나루를 지나자 비포장길마저 끝났다. 어라연까지 약 700m는 돌밭과 모랫길이다. 겨울가뭄이 심해서인지 계곡의 물은 많지 않았다.

물 바깥으로 드러난 돌들은 모두 밀가루 반죽으로 빚은 듯 하얀 흙을 뒤집어 쓰고 있었다. 이 지역에 석회암이 많고 동강의 맑은 물에 석회석이 녹아 있다는 사실을 맨 눈으로도 알 수 있었다.

너럭바위가 가까워지면서 물색깔이 깊이를 더해갔다. 징검다리를 건너 바위에 올랐다. 저절로 한숨이 내쉬어졌다. 바위 위에서 내려다 본 어라연의 물속은 인간세상이 아니었다.

「수궁(水宮)」이었다. 물에 잠겨있는 바위들이 저마다 다른 각도로 햇살을 반사하면서 푸른 무지개를 만들어내고, 그 색깔을 입은 맑은 물은 멈춘 듯 흐르는 듯 계곡을 감돌고 있었다.

어라연은 「물고기가 뛰노는 연못」이라는 뜻이다. 수십종의 물고기가 떼를 이뤄 살고 있다. 그 중에는 열목어 어름치 황쏘가리등 천연기념물도 많다. 생태학계에서 연구에 필요한 어종을 얻으려 주로 찾는 곳이 바로 어라연이다.

속살이 깊은 이 계곡에는 또 하나의 볼거리가 은밀하게 숨어있다. 어라연 상류 문산리의 맞은 편 산에 잠겨있는 운중사(雲中寺). 이름 그대로 구름 속에 떠있는 듯한 절이다.

예불을 올리기에도 비좁은 자그만 산사이지만 왼쪽 바위에서 떨어지는 두 줄기의 폭포와 어우러져 신비함을 자아낸다. 거운교를 지나 험한 비포장길로 절운재를 넘어 30여분을 돌아 들어가야 한다.

/영월=글 권오현기자 koh@hankookilbo.co.kr

【사진설명/위】 절벽과 산으로 가로막힌 어라연계곡에서는 아직도 나룻배가 주민들의 중요한 교통수단이다. 깎아지른 절벽과 그 밑에 떠있는 조각배가 선계의 풍광을 연출한다. /박서강기자

【사진설명/아래】어라연의 물빛은 「맑은 쪽빛의 완성형」이다.

*영월 동강과 어라연 가는 길

■서울→영월: 영동고속도로 남원주IC에서 중앙고속도로로 진입, 남하하다가 신림IC로 빠진다. 402번 지방도로를 타고 황둔→주천→소나기재→장릉을 지나면 영월읍이다. 서울서 약205㎞.

■영월읍→거운교: 영월역에서 태백쪽으로 500여m 가면 기형적인 사거리가 나온다. 신호등이 없고 다른 차의 진행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으니 주의해야 한다. 오른 쪽은 태백, U턴에 가까운 왼쪽은 영월로 돌아가는 길이다. 10시방향의 오르막길로 반(半)좌회전, 번재→둥글바위등을 거쳐 9.5㎞가량을 달리면 거운교가 나오고 포장길이 끝난다.

■거운교→어라연: 거운교를 건너기 전 오른 쪽에 래프팅 티켓을 끊던 빈 부스가 있다. 부스 옆 비포장길을 따라 가교를 건너 1㎞쯤 가면 만지동이 나오고 민가가 있는데 어라연계곡이 시작되는 곳이다.

민가 상류쪽에 만지나루터가 있고 100여m 더 가면 비포장길도 끝난다. 어라연까지 남은 700여m는 돌밭과 모랫길. 걸어서 30분거리. 운전이 서툴거나 바닥이 낮은 승용차, 특히 악천후에는 아예 거운교에 차를 놓고 들어가는 게 낫다.

길바닥의 요철이 심하고 비가 내리면 진흙탕이 돼버린다. 가교가 물에 잠기면 거운교를 건너 험한 산길을 타야한다. 영월읍에서 거운리까지 하루 다섯차례(오전6시30분, 8시30분, 오후1시, 3시30분, 6시30분) 버스가 있고, 택시는 거운교 또는 만지동까지 1만5,000원정도를 받는다. 무선통신 불통.

*쉴곳과 먹을거리

만지동에는 세 채의 민박집이 있다. 이준(0373-372-1463·7실), 백명준(374-0725·2실), 이해수(372-0825·2실)씨의 집이다. 방의 크기와 인원에 따라 1실 2만~3만원이다. 과거 비수기에는 예약이 필요없었지만 요즘은 빈방여부를 확인하는 게 좋다. 영월에는 호텔은 없고 장급여관만 10여개 있다.

산골이라 도시사람에게 자신있게 내놓을 음식은 많지 않다. 민박집에서는 맑은 동강에서 물고기를 직접 잡아 매운탕을 끓여준다. 쏘가리가 주종목이지만 겨울에는 없다.

마자 모래무지등 갖은 민물고기로 끓인 매운탕은 4인 기준 2만원. 여름에 쏘가리매운탕은 4인기준 3만원, 회는 ㎏당 6만원을 받는다. 영월에는 단종의 능인 장릉과 유배지 청령포 주변에 관광객을 위한 음식점이 밀집해 있다.

장릉 옆의 장릉보리밥집(374_3986)은 외부인에게도 잘 알려진 맛집. 여유분을 준비하지 않기때문에 때를 놓치면 헛걸음을 하기 일쑤다. 맞은 편의 청솔숫불갈비(374-8830)는 평범한 갈비집처럼 보이지만 메뉴가 다양한데다 깔끔하고 맛갈스럽게 음식을 차려 단골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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