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대통령 기자회견/남북문제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24일 북한의 미전향 장기수 북송 요구에 대해 「상호주의」를 내세워 완곡히 거절했다. 김대통령은 동시에 『북한에 식량과 비료를 지원하고 싶다』면서 상호주의를 「융통성있게」적용하겠다는 뜻을 시사했다.
언뜻 모순된 발언으로 들리지만, 가능한한 신축적인 자세로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들이겠다는 것이 김대통령의 진의다. 김대통령은 기자회견의 모두 발언에서도 「신중하지만, 필요하다면 과감한」대북정책이라는 2중어법을 구사했는데, 강조점은 후자에 있다.
김대통령은 미전향장기수를 「남파간첩」으로 지칭한 뒤, 『국민감정이 용납하지 않는다』면서 북한이 요구한 무조건 북송은 거부했다.
동시에 김대통령은 이 문제에 대해 여러가지 가능성을 남겨놓았다. 김대통령은 이날 북한에 대해 『언젠가는 내가 풀어나갈 문제이지만, 지금 당장 장기수들을 돌려보내기는 어렵다』는 정도의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해석된다.
임기중 특사교환과 정상회담 등 남북관계의 획기적인 개선방안을 다단계로 검토하고 있는 김대통령으로서는 미전향 장기수를 중요한 대북(對北)카드로 갖고 있겠다는 생각인 것같다. 북한의 요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주도적인 화해조치로 북송문제를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반면 김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비료를 「선(先)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보다 분명히 했다. 회담 형식도 입장을 완화했음을 시사했다. 적십자를 통해 인도주의 차원의 비료지원을 선행시킨 뒤 당국간 대화가 이뤄지기를 희망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당장 우리측의 역(逆)제의가 나갈 분위기는 아니다. 정부는 북측의 반응을 더 관망하겠다는 자세이다. 김대통령으로선 금창리 지하시설에 관한 북미간 협상이 귀결될 때까지 「과감한」대북조치를 취하기 어렵다는 사정도 있다. 한마디로 이날 회견은 김대통령이 앞으로 남북관계의 상황 변화에 대비해 여러가지 선택의 여지를 남긴 자리였다고 볼 수 있다.
/유승우기자 swyoo@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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