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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매릴린 옐롬의 「유방의 역사」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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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매릴린 옐롬의 「유방의 역사」출간

입력
1999.0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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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가슴은 누구의 것입니까』 우스운 질문이다. 엉뚱한 물음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터이다. 하지만 적어도 여성들에게는 이 질문이 아주 최근까지도 상당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여성들이 자식을 모유로 키울지 그러지 않을지 선택할 수 있었던 게 얼마나 오래된 일일까. 자신의 가슴에 대한 의학 치료에 약간이나마 발언권을 가졌던 것은 또 언제부턴가.

미국의 여성학자 매릴린 옐롬은 「유방의 역사(A History Of The Breast)」(자작나무·윤길순 옮김)에서 이런 질문에 이채롭게 답하고 있다. 풍속 빈곤 매춘 허영등 정통 역사학에서 다루지 않는 소재로 역사를 풀어가는 「아날학파」의 연구 방식을 좇는 재미도 쏠쏠하다.

옐롬은 20세기 이전까지는 아이에게 젖을 먹이라는 명령과 가슴으로 기분좋게 성욕을 자극하라는 명령이 여성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명제였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남성들은 누구나 여성의 유방을 그들의 재산처럼 여겼다. 여성의 동의는 물론 필요없었다.

옐롬은 이런 관점에서 여성의 가슴이 갖는 사회적 의미를 신성한 유방 에로틱한 유방 가정적인 유방등 총 9가지 유형으로 나눠 분석했다. 여성의 가슴은 학대의 연속이다. 풍요와 다산의 상징이었고 14세기 전까지도 신앙의 대상이었던 가슴은 그보다 적지 않은 시간을 에로틱하고 상업적인 상품으로 취급받았다. 아이를 키우기 위한 젖먹이기 도구, 아내의 매력을 높여주는 수단이 되는가 하면 심지어 국가를 위한 정치적인 목적에 이용되는 운명도 겪는다. 프랑스 혁명을 상징하는 그림들은 가슴을 드러낸 여성들로 가득 차 있다. 2차 대전에서 영국의 보잉 B_17기에 그려진 가슴 벗은 여성은 지배욕과 파괴욕을 불어넣는 도구였다.

옐롬은 『문제는 지금부터』라고 진단한다. 최근 100년 동안에 비로소 여성들이 젖먹이기에 대한 정당한 선택권을 갖게 되었고, 의학에서도 여성의 가슴을 「젖을 잘 짜내는 도구」로써가 아니라, 몸의 일부로 연구하고 있다. 60년대 여성해방운동이 브래지어를 화형하면서 출발한 것은 여성 가슴의 해방이 페미니즘의 물결과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새롭게 쓰는 유방의 역사에 무엇을 발견하고 보탤 것인가. 당장 유방암으로 쓰러지는 여성들, 그들의 가슴을 구하는 길이 유방의 역사를 장식할 새로운 장이다. 그는 이제 여성의 가슴이 「병과 죽음의 용기(容器)」라는 의미를 벗어나 「생명 자체의 승리」로 다시 온전하게 자리매김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범수기자 bskim@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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