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만의 정권교체가 갖는 큰 의미 중 하나는 망국적 지역감정 해소의 계기 마련이었음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국민의 정부가 출범한지 1년이 지난 지금 이 기대는 어느 정도 충족됐을까. 김대중대통령은 기회있을 때마다 『내 임기중 모든 노력을 다해서 악마의 주술과도 같은 지역주의를 반드시 종식시키겠다』고 강조해왔지만, 지역갈등의 수위는 시간경과와 더불어 오히려 상승곡선을 그려왔다.정부·여당은 『영남지역을 중심으로 얼토당토 않은 유언비어들이 난무하고 있다』며 발본색원을 다짐하고 있다. 기가 막힐 노릇임에는 틀림없으나, 정작 중요한 사실은 유언비어가 횡행하는 현상보다는 그런 유언비어들이 먹혀드는 현실이다. 많은 영남사람들이 이성적 판단과 상관없이 그런 유언비어들에 심정적으로 동의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지금의 지역갈등은 인사문제가 그 촉발점이 됐다. 현 정권의 첫 공직인사 뒤 아랫동네에서 번지기 시작한 『호남정권이 경상도 공직자 다 죽인다』는 선동어가 지역감정의 불길을 지폈고, 영남 4개 지역에서 치러진 4·2 재·보선이 여기에 기름을 부었다. 새정부 출범후 선거를 통한 첫 여야대결이었던 4·2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은 「영남 푸대접론」을 외치며 지역감정 부추기기를 서슴지 않았고, 결과는 네곳 싹쓸이로 나타났다.
두달 뒤 치러진 6·4 지방선거는 동서분할 구도가 심화하고 있음을 「그림」으로 보여주었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수도권·충청권·호남권·제주 등 국토의 서쪽을, 한나라당은 강원·영남권 등 국토의 동쪽을 나눠 가졌다. 소모적 정쟁과 지역분할 구도에 힘입은 여서야동(與西野東)구도의 확대재생산이었다. 각종 풍(風)사건과 정치인 사정 및 야당파괴 시비 끝에 한나라당이 택한 장외투쟁 전략은 지역감정을 끝간데 없이 부풀려 놓았다. 한나라당은 「빅딜울분」등을 꼬챙이 삼아 지역정서를 들쑤셨고, 가뜩이나 박탈감·소외감에 분풀이 대상이 마땅찮던 영남민심은 「장외운집」으로 한나라당의 바람에 「부응」했다.
학자들은 편파인사 해소와 지역균형 발전을 지역갈등 해소의 선결요건으로 꼽는다. 예산의 공정배분 등에서 볼 수 있듯 현 정권의 균형발전 노력은 나름의 평가를 받고 있다. 편중인사는 최근들어 외려「호남 역차별론」이 나올 정도로 완화되는 추세다. 그럼에도 지역감정이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은 지역분할 구도를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세력이 엄존하는 까닭이다. 이 세력들이 퇴출되지 않는 한 지역감정 타파는 공염불에 불과하다.
/홍희곤기자 hghong@hankookilbo.co.kr
>
(C) COPYRIGHT 1998 THE HANKOOKILBO -
KOREALINK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