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복권이 단행된 22일 오전 경기 부천시 소사구 유소영(柳素瑛·41·여)씨 집 안방. 네 자매와 함께 뉴스에 귀를 기울이던 유씨는 아이들의 머리를 쓸어안으며 끝내 속울음을 토했다. 『어제 아이들과 함께 면회한 자리에서 아버님이 「기대하지 말라」고 하시더군요. 하지만 「혹시나」하는 마음까지 지우지는 못했어요』94년 구국전위사건(국가보안법)으로 8년형을 선고받고 대전교도소에서 5년째 복역중인 유락진(柳洛鎭·71)씨. 유씨의 영어(囹圄)생활은 이게 전부는 아니다. 전남 보성 예당중고교에서 사회과 교사로 있던 71년 통혁당재건사건으로 구속됐던 그는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뒤 무기로 감형돼 91년 2월 사면으로 출옥했다. 휴전직후 잠시 「쉬다 나온」것까지 합치면 반평생 가까운 세월을 감옥에서 보낸 셈. 막내동생 영선(당시28세)씨가 80년 광주에서 전남도청 17인 사수조로 남아 숨졌다는 소식을 듣는 등 남동생 둘을 잃었다.
유씨에게 가족과 함께 보낸 3년4개월여의 「휴가」는 일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손자들과의 낯익히기, 컴퓨터 늦공부, 혼자서 4자매를 번듯이 키워내고 암선고를 받고 누운 아내(67)의 간호마저 차라리 행복한 기억이다.
『어제 면회때 「대전교도소 장기수 사동도 이제 텅 비어 심심하겠다」고 하시더군요. 이제 「약골」이라로 놀리며 감옥 안에서나마 아버님 건강 챙겨줄 친구분도 없이…』 유씨는 간신히 추스린 눈물을 다시 쏟았다.
/최윤필기자 term@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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