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내 주요 사립대의 졸업식이 있던 22일. 저녁때도 아닌 대낮에 강남의 한 유명 나이트클럽에서 수십명의 대학 졸업생과 그 친구들이 이상한 「제비뽑기」를 하고 있었다. 밤새도록 놀 룸을 원하는 단골들이 많자 업소측이 제비뽑기라는 묘수를 낸 것이었다.이날 오후 1시30분께 강남구 청담동 J(줄리아나) 나이트클럽으로 여대생으로 보이는 화사한 옷차림의 여자들이 2~3명씩 짝을 지어 종종걸음치며 들어갔다. 손에 꽃다발을 든 여자도 있었고 남학생끼리 짝지어 온 경우도 많았다. 대부분 무엇에 쫓기는 듯 서둘러 고급스럽게 치장된 계단을 따라 급히 내려갔다.
정각 2시가 되자 업소 직원이 50여명의 고객을 향해 『룸을 원하시는 분들은 줄을 서주세요』라고 말했다. 업소에서 준비한 나무젓가락 모양의 제비에는 15번까지 룸 번호가 적혀 있었다. 당첨된 남녀들은 이때부터 룸을 차지하고 앉아 놀기 시작했다. 이들은 졸업생이거나 저녁쯤 합류할 졸업생 친구나 선배를 위한 선발대였다. 제비뽑기 탈락자들은 홀 좌석이라도 얻어서 놀아볼까 하고 기다렸다. 업소측은 『지난해 주요 사립대 졸업식때 손님이 너무 몰려 선착순으로 입장시킨 바람에 항의를 받았었다』며 『이번에는 공정을 기하기 위해 제비뽑기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물론 제비뽑기 후보들은 웨이터의 연락을 받은 「로열 고객」들이었다.
이 업소는 부유층 자녀들이 주고객으로 「물」이 좋은데다 소위 「부킹」도 잘 돼 비싼 술값에도 불구하고 강남 최고의 나이트클럽으로 자리를 굳혔다. 이 업소만큼이나 유명한 강남의 B나이트클럽 역시 이날 대낮부터 예약고객들로 흥청인 것으로 알려졌다.
극심한 취업난으로 감격스런 「졸업식」이 아니라 허탈한 「퇴출식」의 비애를 씹는 이들과 대낮부터 나이트 클럽에서 수백만원을 써가며 기분내는 일부 졸업생들. 멋있는 곳에서 조금 일찍 자리를 잡아 4년만의 회포를 푸는게 무슨 잘못이냐는 항변도 있지만 사회 전반의 분위기와는 거리가 있어 씁쓸했다. 이날 서울에서는 연세대 이화여대 홍익대등 주요 사립대의 졸업식이 열렸다.
윤순환기자 shyoon@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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