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란(換亂)의 폐허에서 시작된 김대중(DJ)정부의 경제 1년은 「계기비행」을 용납하지 않았다. 신용경색과 경기침체의 끝은 보이지 않았고, 러시아사태 등이 돌발적으로 터져나와 항상 제2의 환란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했다. 「시계(視界)비행」으로 힘든 고비를 넘긴 1년을 되짚어 본다.▦외채조정협상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금융기구의 지원으로 환란의 불은 껐다. 97년 12월 26.3%로 내려갔던 단기외채 만기연장률이 한달만에 81.9%로 회복됐지만 218억달러의 단기외채 상환이 복병으로 다가 왔다. 지난해 1월말부터 시작된 외채조정 협상의 깔끔한 마무리(3월16일), 40억달러의 외국환평형기금채권발행 성공(4월8일) 등으로 국가부도위기는 넘길 수 있었다.
▦노사정위원회 가동 외국인투자자 및 해외 언론들은 한국의 노동개혁에 의문을 표시해 왔다. 「국민의 정부」초반도 예외는 아니었다. 제1기 노사정위원회의 발족(1월8일)과 노사정 공동협약 체결(2월6일)은 이런 의구심을 불식시키는 계기가 됐다.
▦6·29 은행 퇴출 부실채권으로 껍데기만 남은 금융기관은 신용경색과 금융시장 불안정의 진원지중 하나였다. DJ정부는 5개 은행의 퇴출로 「은행 불사(不死)」의 신화를 깼다. 사상 초유의 일이라 혼선도 따랐다. 그러나 금융기관이 영리기관으로 탈바꿈하는 약이 됐다는 평가다.
▦현대자동차 파업 5월부터 시작된 노동계 파업은 고실업사태의 결과물이었지만 외자유치를 통한 경제회생의 장애물이었다. 국내외 이목을 집중시킨 현대자동차의 파업(8월17일)은 정부 개입을 통해 수습됐다. 노사 자율해결의 원칙에 금이 갔으나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12·7 정부-재개 합의 개혁이 가장 부진했던 분야중 하나는 재벌. 중복과잉투자 해소 등을 위한 대기업 사업교환(빅딜)이 지지부진하자 김대통령이 직접 나서 5대 그룹의 구조조정안을 이끌어 냈다. 재벌개혁에 대한 정부의 확고한 의지를 보인 동시에 빅딜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신용등급 상향조정 올들어 피치 IBCA(1월19일)를 시작으로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1월25일) 무디스(2월12일) 등 세계적인 신용평가기관이 우리나라 신용등급을 투자적격으로 상향조정했다. 회생과 재도약의 국제적인 공인.
/정희경기자 hkjung @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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