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정부가 출범하고 헌정사상 최초의 여야간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뒤 우리사회는 적잖은 변화를 겪었다. 변화는 상부 권력층의 물갈이 등 가시적인 것에서부터 직업관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관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 김대통령의 취임1주년을 맞아 각 분야에서 두드러진 변화의 양상을 짚어본다.▣공직사회
구조조정의 칼바람은 공직사회에도 어김없이 불어닥쳐 공무원들은 더이상 신분보장이란 틀속에 안주할수 없게 됐다. 이에 따라 경쟁력과 효율성이 강조되고 실적과 실력이 좌우하는 풍토가 새롭게 조성되고 있다. 공무원들을 상대로한 컴퓨터특강 교실이 밤늦은 시간까지 꽉꽉 차고, 어학 등 각종 연수도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등 생존과 자기발전을 위한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조직과 사람이 크게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사안일, 복지부동, 줄대기 등 고질적인 병폐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권력기관
최근의 「검란(檢亂)」이 상징하듯 검찰 국가정보원 등 이른바 권력기관은 변화를 넘어 변혁수준의 혼란을 겪고있다. 이는 물론 최초의 여야간 정권교체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급격한 변화로 인해 권력기관이 명분을 세워놓고 이를 실천하지 못하는 괴리도 노정됐다. 기획사정은 상당부분 사라졌지만 오히려 일선검찰의 무차별적인 정치인수사가 이어져, 정치를 꼬이게하는 원인이 됐다. 안기부도 이름부터 국정원으로 바꾸고 1,000여명의 과거 인맥을 교체하거나 방출하며 쇄신을 시도했으나 여전히 정치사찰 논란에 휘말렸다.
▣재벌
재계의 한해도 숨가쁜 변화의 연속이었다. 출발점은 98년 1월13일. 당시 김대중대통령당선자와 4대그룹총수는 경영투명성제고, 재무구조 개선, 핵심사업설정 등 5개항에 합의했다. 이를 바탕으로 재벌체제의 사령탑인 그룹기획조정실이 해체되고 계열사의 통폐합이 이루어졌으며 총수는 경영전면에서 권한과 함께 책임까지 져야하게 됐다. 5대그룹은 7개업종에 대한 대규모사업교환에도 나섰으나 정치논리의 개입과 해당기업 및 근로자들의 반발로 진통을 겪고있다. 이 와중에서 현대는 지속적인 확장세를 보여 주목을 받았다.
▣직업문화
IMF경제난과 재계개혁을 거치면서 전통적인 직장개념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구조조정태풍으로 정리해고, 명예퇴직 등 대대적인 고용조정이 이루어졌고 연봉제, 스톡옵션 등 인사혁신과 함께 평생직장, 종신고용신화도 무너져 조건만 맞으면 직장을 옮기는 「철새」들이 급증했다. 연봉제 도입으로 입사동기간에도 능력과 업적에 따라 수백만~수천만원의 급여차이가 나게돼 치열한 경쟁논리가 직장문화를 지배하게 됐다. 거품경제시대에 대표적인 기피부서였던 영업직 및 해외직 등이 다시금 인기를 끌게된 것도 눈에 띄는 변화중 하나다.
▣은행
은행 관계자들은 『지난 한해의 변화는 과거 100년과 맞먹을 정도』라고 혀를 내두르고 있다. 은행의 대개편이 간단없이 이어졌고 대출이나 인사관행도 철저히 파괴됐다. 우선 98년 6월 5개은행이 퇴출됨으로써 「은행은 망하지 않는다」는 신화가 깨졌다. 상업, 한일, 국민, 장기신용, 하나, 보람은행 등은 서로 합병절차를 통해 슈퍼뱅크로의 모양을 갖췄다. 제일, 서울은행의 주인은 아예 외국계자본으로 바뀌었다. 이와 함께 정치권의 외압이나 담보로만 이루어지던 대출관행이 신용대출로 바뀌는 등 새로운 금융질서가 형성되고 있다.
▣교육
교원정년이 65세에서 62세로 단축됐으며 교원노조 합법화가 이뤄졌다. 2002년부터 소질과 적성에 의한 대입전형제도 도입이 확정됐고, 이에 맞춰 올해 고교 1년부터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을 폐지하는 등 성적위주에서 탈피한 획기적인 새학교문화가 모색되고 있다. 대학도 대학원중심대학으로 개편을 시작하고 교수계약제를 도입하는 등 미래 지식기반사회에 대비한 경쟁체제를 갖춰가고 있다. 교육및 교육행정기관도 구조조정 대상이 돼 시·도교육청과 국립대학 일반직정원이 10%이상 줄어들었다.
▣시위문화
지난해 서울에서 최루탄 연기가 날린 것은 단 두차례. 5월1일 노동절과 9월1일 만도기계 노사분규 때였다. 따라서 최루탄 사용량도 줄어 97년 13만 2,972발(12억9,280만원)이었으나 지난해에는 3,403발(3,725만원)에 불과했다. 이는 최루탄 사용량이 정확하게 집계되기 시작한 86년 이후 최소량이다. 시위문화가 평화적으로 바뀌면서 경찰은 지난해말 전경대버스 등에 설치된 철망을 벗겨냈다. 그러나 운동권학생들의 불법폭력시위는 크게 줄어든 반면, 기업 구조조정 등 영향으로 생계형·민원형시위는 오히려 늘어났다. 지난해 학생시위는 1,445회, 생계형·민원형 시위는 5,800회 발생했다.
▣색깔시비
햇볕론 속에서 오랫동안 우리사회의 중요한 화두가운데 하나였던 소위 「색깔론」이 뚜렷이 퇴조하고 있다. 지난해「최장집(崔章集)교수의 논문 파문」의 전말은 우리사회의 지배이념이 중심이동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최교수가 소송을 취하함으로써 파문은 가라앉았지만 그동안 이념적 표적이 돼온 진보진영이 대반격을 가하는 계기가 됐다. 현대그룹의 금강산개발사업에 대한 긍정적 여론 등은 더이상 보수이념이 우리사회의 유일가치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유승우기자 swyoo@hankookilbo.co.kr
이충재기자 cjlee@hankookilbo.co.kr
조철환기자 chcho@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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